우리의 일그러진 영웅 한국기독교는 왜 우파가 됐나

글쓴이: 한마당  |  등록일: 08.24.2020 13:38:04  |  조회수: 485
"만일,주님이 그대를 진정 사랑하셨더라면

그저 바라만 보고 계시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도를 넘은 행동에 주님도 등을 돌려 외면하시면서 구원의 손길을 거두시고,그가 순교의 길로 가도록 자유로운 영혼을 선물로 주시었다.

한 번 가면 건너오지 못 할 요단강을 건너가는 노자로 사용할 수 있도록 광화문 헌금통은 들고 가도록 허락을 하시었다. 주님께서도 코로나19에 오염된 헌금은 받기를 꺼린다는 전갈을 비서를 통해 은밀히 보내셨다고 했다.


-- 전광훈의 '반역'은 왜 실패했는가 -- 이종혁펌

물론 아직도 수많은 태극기 집회 열혈 참가자들이 세를 과시하고 '광장 정치'에 뛰어들며, 이 중 보수 반공주의적 기독교인들은 전광훈의 헌금함에 돈을 넣으려 한다.
그러나 전광훈의 '한기총'엔 사실상 아무도 남아 있지 않고, 그의 돌출적 말과 행동이 신문 지면을 떠들썩하게 할 뿐, 교계와 정치에 대한 영향력은 사실상 끝났다고 봐야 한다. 사랑제일 교회 단일로는 교계에 미치는 영향력은 미미하다. 웃으며 앰블런스를 탄 전광훈은 곧 병원을 거쳐 감옥에 들어갈 것이고, 더이상 광장과 신문에서 그의 이름은 사라질 것이다.

전광훈을 설명하기 위해선 한국 사회에서 왜 기독교가 이런 보수 정치의 첨병이 됐는지를 먼저 얘기해야 하겠는데, 민중신학자 김진호 선생의 "대형교회와 웰빙보수주의" (도서출판 오월의 봄. 2020, 7.) 를 참조하여 보겠다.

대한민국 기독교계가 반공주의의 온상이 된 것은 평안도에서 월남한 한경직의 영향이었다고 봐야 한다. 한경직은 영어를 잘 했고 기민한 사람이었으므로 재빨리 미 군정의 눈에 들었고, 이들의 지원을 받아 서울에 성베다니 교회를 세운다. 이 교회는 해방 직후 어수선했던 동 시기 월남한 서북지역의 과격한 반공 인사들을 빠르게 흡수했고, 이름은 얼마 후 영락교회로 바뀌었다.

왜 남한에서 한경직의 영락 교회가 가장 빨리 팽창했을까? 이유는 한경직이 강성 반공 노선을 표방했기 때문이다. 영락 교회 청년부에는 서북 청년회의 골수들이 즐비했다. 미군정청, 군정청 산하 경무국, 이승만 등 강성 우파 지도자들과 친일 경력이 있는 자본가들이 이들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

전쟁이 벌어지자 이는 민족의 위기 상황이 되었지만, 한경직의 영락 교회에는 다시 없는 성장의 자양분이 되었다. 이념 전쟁 속에서 강성 반공 노선을 표방한 한경직의 교회를 중심으로 미국 등 서방 원조 네트워크가 활발히 가동된 것이다. 원조 물자가 오는 루트는 여러 개였지만, 당시의 혼란스러웠던 상황 속에 교회를 통해 들어오는 원조가 가장 확실했고 한경직의 영락 교회는 이를 착실히 이용하여, 원조금과 원조 물자를 마음껏 주무르며 피난지의 권력자들과 연대하고 굉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50~60년대는 한경직의 시대였다. 그렇게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한경직의 영향력이 정치 사회적으로 막강했다. 그러나 개신교의 교세는 그에 걸맞은 정도로 팽창하지 못했다. 교세가 전 인구의 2%정도를 넘지 못했다.
시간이 흘렀다. 어느 새인지 모르게, 신유와 질병 치유 등, 보다 눈에 보이는 확실한 복을 비는 종교 분위기가 빠르게 민중들 속을 파고 든다.
당시 남한 민중은 질병과 가난에서 오는 비참함에서 벗어나고 싶어 발버둥치고 있었고, 이런 심리를 꿰뚫고 신비주의적 신앙 운동이 활개를 치기 시작한 것이다. 이른바 대부흥의 시대의 시작이었다.
부흥회의 선두주자였던 나운몽은 실패했으나, 이와 맥을 비슷하게 일어난 조용기의 순복음 교회는 영락교회를 압도하는 엄청난 팽창과 성장을 이끌었다. 이제 한국 교회는 '강성 반공의 교회'에서, '기복과 부흥, 팽창의 교회'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그것이 70~80년대였다. 또, 나운몽과 쌍벽을 이루었던 박태선의 전도관은 실패했으나, 그 뒤를 이은 이만희는 2000년대 '신천지'를 성공시키며 최대의 성장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90~2000년대에 이르면서 이제 남한의 1,2세대 교계의 '창업주'들이 많이 세상을 떠났다. 동시에 국민들의 '세대'도 바뀌어가고 있었다. 전쟁을 겪지 않은 젊은 세대들이 주류를 메우기 시작했고, 부와 소비는 서울, 강남에 집중되기 시작했다. 당연히 서울, 강남에 새로운 대형 교회들이 쑥쑥 성장하기 시작한다.

개신교는 70~80년대를 거치며 경이적인 신자 수의 증가를 가져왔지만, 90~2000년대에는 정체된다. 즉, 강남의 대형교회들은 새로운 신자를 전도하는 것이라기보다, 여타의 교회로부터 수평적인 신자 이동을 이끌어 성장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그러면서 신앙의 행태도, 부흥회와 치유, 엑스타시로 묘사되는 '열광'보다는 대규모의 찬양과 설교에 대한 '관조'의 행태로 넘어가게 된다.

이는 한국 사회의 세대 변화를 의미한다. 물론 반공주의적인 기조와 보수적 기조는 면면히 남아 있으나 이제 교계의 주류는 반공과 열광적 부흥이 아니라, 관조와 웰빙에 촛점이 맞춰지는 식으로 그 구성원의 신앙 행태가 변화한 것이다.
지금의 대형교회를 덮고 있는 기조는 '웰빙 신앙'이라는 것이다.
웰빙이란 교육, 경제, 주거, 식이, 문화 등 여러 가지 면에서의 품위 있는 소비를 지향한다는 뜻인데, 종교 활동 역시 그러한 '품위 있는 소비 행태' 중 한 브랜치로서 영위하는 것이 지금의 대표적 신앙 행태라는 것이다.
김진호 선생의 표현대로라면 '웰빙 보수주의 신앙'의 시대인 것이다.

품위 있는 웰빙 신앙을 영위하고 싶어하는 현재의 주류 기독교계는 전광훈의 꽹가리 치는 듯한 요란한 정치 선동에 고개를 돌려 버린다. 태극기 집회는 탄핵 이후 계속 열렸고, 상당한 수의 강성 반공 (고연령층의) 교인들이 세를 동원해 준 것은 사실이나 그러한 광장 정치가, "촛불 집회"처럼 정권의 탄핵을 가져오진 못하였다. 즉, 한국 사회에서 이제 '강성 반공주의자'들의 시대는 종언을 고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전광훈은 그러한 시대의 끝을 붙잡고 어떻게든 발버둥을 쳤던 인물이라 기억될 것이다. 앞으로는 그의 이름이 지금까지처럼 요란하게 울려퍼질 일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한때 대한민국을 호령하던 강성 반공 이념의 시대도 이제, 고령의 옛 세대들의 쉰 음성 속에 그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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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Buynow  08.24.2020 17:21:00  

    정보 감사,
    지금은 바쁘고 나중에 퍼가요.
    미국에는 21세기에 부적합한 이스람이 빠르게 일어나요
    기독교에 대한 반감 이지요.

  • Buynow  08.24.2020 17:30:00  

    예수는 보수 바리세인들에게 덤벼들었던 진보 좌파 입니다. 그래서 미움을 받아 십자가에 달렸으나
    ㄱㅐ독교가 보수가된건 예수에 등 돌리고 이익 때문 이지요. 보수는 돈이 많아요.
    그래서 가난하게 자란 이명박이 보수에 붙었고, 보수는 이익에 편승하고, 나라 국민은 외면, 가난한 사람, 힘없는 사람 외면, 그래서 대기업들은 보수가 됬어요. 미국에서도 공화당은 가진자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