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종기 시인과 마종하 시인'
우화의 강 / 마종기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두 사람 사이에 물길이 튼다
한쪽이 슬퍼지면 친구도 가슴이 메이고
기뻐서 출렁거리면 그 물살은 밝게 빛나서
친구의 웃음소리가 강물의 끝에서도 들린다
처음 열린 물길은 짧고 어색해서
서로 물을 보내고 자주 섞여야 겠지만
한 세상 유장한 정성의 물길이 흔할 수야 없겠지
넘치지도 마르지도 않는 수려한 강물이 흔할 수야 없겠지
긴 말 전하지 않아도 미리 물살로 알아듣고
몇 해쯤 만나지 못해도 밤잠이 어렵지 않은 강
아무려면 큰 강이 아무 의미도 없이 흐르고 있으랴
세상에서 사람이 만나 오래 좋아하는 것이
죽고 사는 일처럼 쉽고 가벼울 수 있으랴
큰 강의 시작과 끝은 어차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물길을 항상 맑게 고집하는 사람과 친하고 싶다
내 혼이 잠잘 때 그대가 나를 지켜보아주고
그대를 생각할 때면 언제나 싱싱한 강물이 보이는
시원하고 고운 사람을 친하고 싶다.
마씨 성을 가진 시인들의 시는 참 푸근해^^
딸을 위한 시 / 마종하
한 시인이 어린 딸에게 말했다.
'착한 사람도, 공부 잘하는 사람도 다 말고
관찰(觀察)을 잘하는 사람이 되라고.
겨울 창가의 양파는 어떻게 뿌리를 내리며
사람들은 언제 웃고, 언제 우는지를.
오늘은 학교에 가서
도시락을 안 싸온 아이가 누구인지 살펴서
함께 나누어 먹기도 하라고.‘
* 마종기-생애
1939년 1월 17일 일본 도쿄에서 출생하여 지난날 한때 일본 교토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으며 일본 도쿄에서 소학교 1학년에 다니던 중 1945년 일본국 패망 및 조선국 광복이 도래하자 이듬해 소학교 2학년 시절이던 1946년 9월에 부모와 함께 미 군정 조선 서울(현재 대한민국 서울특별시)에 귀국하였으며 서울아현국민학교 2학년에 편입하였다. 아버지는 아동문학가 마해송(馬海松)이며, 어머니는 한국최초 여성 서양무용가이자 이화여대 무용과를 창설한 무용가 박외선(朴外仙)이다.부모로부터 예술적 자질을 물려받은 그는 어린 시절부터 시쓰기를 좋아했고 중학생 시절에는 이미 당대 ‘학원’ 문단에서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서울고등학교,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원을 나왔다.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본과 3학년이던 1959년, 시 「해부학 교실」 등의 작품으로 박두진 시인의 추천을 받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으며 1960년에는+ 첫 시집 『조용한 개선』을 상자했다. 그리고 이 시집으로 연세대학교 제정 제1회 ‘연세문학상’을 수상했다. 이 즈음 마종기는 가톨릭에 입교한다. 1963년에는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을 나오고 공군 중위로 임관하는데 이때 후일 오랜 친교를 나눌 정현종 시인과 교유한다. 1964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원에 입학. 시동인 모임 〈시단〉에 가입한다. 동인으로는 문덕수, 신동엽, 이형기 등이 있다. 1965년에는 ‘재경 문인 한일 회담 반대 서명’에 참여한 것으로 인해 공군 방첩대에 체포되어 10일간 구류에 처해진다. 이후 1966년 그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박사 과정에 입학하지만 공군 군의관 대위 만기 제대 직후 도미한다. 도미 이후 그는 미국 오하이오주 데이턴 시의 마이애미 밸리 병원 인턴으로 취직하며 의사로서의 경력을 이어간다. 이후 오하이오 의과대학 방사선과 조교수 겸 방사선 동위원소 실장, 오하이오 의대 소아과 임상 정교수 등을 지냈으며 오하이오 아동병원 초대 부원장 겸 방사선과 과장을 역임했다. 특히 1975년에는 오하이오 의과대학 졸업생 대표로부터 이 해 최고의 교수상(골든 애플상)을 받는데 이는 조교수급 동양인으로서는 첫 수상이었다.
도미 이후에도 1968년에는 김영태, 황동규와 함께 3인 시집 『평균율 1』을, 1972년에는 『평균율 2』를 출간하는 등 꾸준히 창작활동을 했으며 이후에도 2010년 출간된 『하늘의 맨살』에 이르기까지 한국에서 계속해서 문제적 시집을 출간하면서 이수문학상, 현대문학상, 박두진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2002년 의사생활을 은퇴한 뒤에는 매년 봄과 가을, 한국을 방문하면서 연세대학교 초빙교수, 서울가톨릭대학교 초빙교수 등으로서 강의를 하고 시집과 에세이집을 출간하는 등 아직 문단의 현역으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작품 세계
마종기의 초기 시세계는 수련의로서 지니는 예민한 죽음 의식과 그로부터 비롯된 삶과 사물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특징으로 한다. 1966년 발표된 첫 시집 『조용한 개선』 에 실린 「해부학 교실 1」과 「해부학 교실 2」는 이를 특징적으로 보여준다. 나아가 1965년 발표된 두 번째 시집 『두 번째 겨울』에 실린 「정신과 병동」은 정신과 병동 환자의 눈을 통해 삶의 쓸쓸함을 노래한 것으로 이 작품은 마종기의 시세계 전반에 걸쳐 드러나는 인간에 대한 따뜻한 공감의 시선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도미 이후 마종기의 작품 세계에는 의사로서의 체험과 디아스포라 체험이 창작의 근간으로 놓여 있다. 도미 이후 발표된 그의 작품들에는 난해한 용어나 개념어들이 자주 등장하지 않지만 쉬운 언어를 통해서도 고통받는 인간을 대하며 느끼는 것들과 그로부터 비롯되는 따뜻한 사유는 독자에게 무리없이 전달된다. 네 번째 시집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와 다섯 번째 시집 『모여서 사는 것이 어디 갈대 뿐이랴』는 모국을 떠나 생활하는 전문의가 경험에 기초한 관찰을 통해 삶과 사물을 따스하게 감싸 안는 시선이 눈에 띄는 시집이다. 나아가 다섯 번째 시집 역시 타인의 고통에 대해 숙고하는 이의 목소리를 담고 있는데 이 시집의 해설에서 김현은 이에 대해 “나는 편안하게 살고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고통스럽게 살고 있다; 나는 그들의 고통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수 없다라는 마종기 특유의 인식이 연대의식 혹은 공동체 의식의 소산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여섯 번째 시집 『그 나라 하늘 빛』에서 존재론적 깊이에 대한 성찰에까지 이르는 마종기의 시선은 이제 타인의 고통과 이산(離散)의 정조를 구체성과 보편성의 문제로 확장시키는 단계에 접어든다. 그 결과 2010년 출간된 『하늘의 맨살』에 이르러서는 “상처와 치유, 순박함과 경건함, 내부와 외부로의 귀환마저 모두 전사(前事)”로 간주하고 이를 동시대의 보편적 체험으로 끌어올리는 경지를 보여준다. 「디아스포라의 황혼」과 현대문학상 수상작인 「파타고니아의 양」 같은 작품은 이산의 비애에 따른 개별적 상처를 넘어서서 삶과 죽음에 대한 유장한 사유에 이르게 되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마종하 시인
원주 출신 마종하 시인(1943~2009)이 지난 1월 별세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고인은 자신의 죽음을 남에게 알리기를 거부해 문단에서 함께 활동한 지인들조차 최근에야 소식을 접한 것으로 알려졌다.
원주문인협회와 지역 문인들에 따르면 마 시인은 지난 1월10일 오전 자택에서 운명했다. 고인은 지난해 각혈 후 암 선고를 받고 두달간 투병해 왔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고 자연으로나 빨리 보내달라"는 고인의 마지막 유언에 따라 주위에 알리지 않은 채 가족장으로 장례가 치러졌으며 유해는 화장해 행주대교 남단에 뿌려진 것으로 알려졌다.
원주출신 후배문인 우대식 시인은 "가족들에 따르면 선생은 돌아가시기 몇 시간 전까지도 예의 그 카랑카랑한 성정대로 주변을 챙기셨다"며 "가족들이 유품을 치우다 병상 틈에서 발견한 쪽지에 '분에 넘치는 행복이었다'란 세상에 남기는 마지막 글이 적혀 있었다"고 전했다.
1943년 12월 25일 원주에서 출생한 마 시인은 원주고와 동국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196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겨울행진'이, 같은 해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 '귀가'가 당선되며 화려하게 문단에 등장했다. '현대시' 동인으로 '월간 스포츠' 편집원을 지냈다.
남산공업전문학교와 마포고 등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참신한 감각으로 꿈의 밀도와 탄력을 노래하는 시인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대표작으로 시집 '노래하는 바다(민족문화사, 1983)', '파냄새 속에서(나남, 1988)', '한 바이올린 주자의 절망(세계사, 1995)', '활주로가 있는 밤(문학동네, 2000)'과 장편소설 '하늘의 발자국(창우사, 1988)' 등이 있다.
한편 문인협회 원주지부(지부장: 권순형)는 원주는 물론 한국문단을 대표하는 고인의 문학정신을 기려 고인의 대표작을 모아 추모낭송회를 계획 중이다.
원주문협 권순형 지부장은 "큰 어른이 또 한분 우리 곁을 떠나 가슴이 너무 아프다"며 "조만간 임원회의를 거쳐 추모낭송회 등 고인과 고인의 문학혼을 추모하는 행사를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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