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에 페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

글쓴이: 한마당  |  등록일: 12.26.2020 14:06:42  |  조회수: 539
--보복하고 응징하는 게 정의다---

<페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

중국의 사상가 루쉰(魯迅)은 1929년 <페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라는 글을 발표했다. 이 글에는 “사람을 무는 개가 물에 빠졌을 때, 그 개를 구해줘서는 안 된다. 오히려 더 두들겨 패야 한다. 그러지 않다면 개가 뭍에 나와 다시 사람을 문다”라는 대목이 있다. 루쉰은 나중에 “원래 ‘물에 빠진 개는 두들겨 패야 한다’라고 제목을 지으려다 너무 모가 나 보여서 고쳤다”라고 회고했다.

1926년 3월 18일 중국의 학생들과 시민들의 평화 시위를 정부가 무력 진압하면서 47명이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른바 3.18 사태다. 1927년에는 4.12 대학살로 불리는 국민당 정권의 만행이 있었다.
이 와중에 지식인으로 불렸던 소설가 린위탕(林語堂)이 “보복할 것이 아니라, 관용과 타협으로 용서하고 과거는 잊어버리자”라는 글 <페어플레이를 하자>를 발표했다. 루쉰의 <페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는 글은 바로 린위탕에 대한 반론이었다.

루쉰이 ‘철저한 보복과 응징’을 주장한 것은 3.18 사태 때 아끼는 제자들을 잃었던 그의 뜨거운 마음에서 출발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평화주의자’를 자처하는 많은 사람들은 “루쉰이 좀 과한 것 아니냐?”고 고개를 갸우뚱한다.
하지만 경제학의 게임 이론에 따르면 루쉰의 이 같은 보복적 태도는 사회 전체적인 편익을 높이는 데 매우 유용한 전략임을 입증한다. 이런 보복 전략을 경제학에서는 ‘팃포탯(tit for tat)’ 전략이라고 부른다.

보복 전략의 우수성
팃포탯 전략을 우리말로 번역하면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략’ 쯤이 될 것이다. 이 전략은 매우 단순하다. 상대가 공정하게 게임을 하면 우리도 공정하게 대하고, 상대가 비열하게 나오면 우리도 비열하게 되받아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보복이란 단지 ‘배신당했기 때문에 열 받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사회 전체적으로 매우 유용하기 때문에 한다는 점이다.

경제학에서는 죄수의 딜레마라는 상황이 있다. 두 범죄 용의자를 각각 다른 방에 가둬놓고 “동료보다 먼저 범죄 사실을 불면 너는 형을 감형해 주겠다. 대신 네 동료가 너보다 먼저 범죄 사실을 불면, 네 동료는 감형을 받지만 너는 중형을 받게 된다”고 위협한 뒤 결과를 보는 것이다.

게임 이론에 따르면 각각 다른 방에 갇힌 범죄 용의자들은 동료를 배신하고 범죄 행위를 자백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 아래 범죄 사실을 전부 털어놓는다. 그래서 동료를 믿고 신뢰했다면 무죄로 풀려날 수도 있었던 두 용의자가, 동시에 서로를 배반하는 바람에 모두 중형을 받게 된다.
그런데 로버트 액슬로드(Robert Axelrod)라는 과학자가 이 모델을 실전에 적용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를 실험한 적이 있다. 죄수의 딜레마 상황을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반복했을 때 죄수들이 어떤 전략을 구사하는지를 보고 싶었던 것이다.

액슬로드는 여러 참가자에게 반복적인 죄수의 딜레마 상항을 준 뒤 어떤 전략으로 나서는지를 살펴봤다. 참가자들은 수많은 전략을 만들어서 제출했다. 단순한 전략부터 매우 복잡한 전략까지 수많은 전략들이 등장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우승자는 가장 단순한 전략을 제출한 라포포트라는 수학자였다. 라포포트의 전략이 바로 팃포탯이었다. 너무 단순한 전략이 우승을 차지한 것에 의심을 품을 액슬로드는 다시 한 번 똑같은 대회를 개최했는데, 이번에도 우승은 팃포탯의 몫이었다.

팃포탯 전략의 핵심은 다음의 네 가지다.                                                                                                           

①우선 나의 출발은 언제나 신사적이어야 한다. 즉 죄수의 딜레마 상황에서 첫 판은 상대를 배신하지 않고 협력(범죄 사실을 불지 않는다)하는 것으로 시작한다는 것이다. 내가 먼저 상대편을 속이거나 배반하지 않는다는 것, 이것이 팃포탯 전략의 맨 처음 태도다.

②상대가 이전 판에서 나를 배신했다면, 나는 다음 판에서 반드시 배신으로 보복한다. 즉 상대가 배신하면 반드시 똑같은 방식으로 보복하는 것, 이것이 팃포탯 전략의 핵심 태도다.

③팃포탯 전략을 사용한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공표한다. 이 전략은 매우 단순해서 상대가 나의 전략을 알아차릴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하지만 팃포탯은 나의 전략을 결코 숨기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상대가 이 전략을 알아차리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상대로 하여금 ‘아, 내가 배신하면 다음 판에 반드시 보복 당하겠구나’를 알아차리게 해야 한다.

④ 상대가 협력적으로 나오면 과거는 묻지 않고 반드시 용서해 준다. 과거에 99판을 배신한 상대라도 한 판을 협력적으로 돌아오면 다음 판에는 나도 반드시 협력으로 응대한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상대가 “나 이번에 협력할게”라고 사탕발림으로 속이는 말에 협력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나의 협력은 상대가 반드시 지난 한 판을 온전히 협력했을 때, 그 다음 판에 내가 협력으로 응대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 전략의 우수한 점은 상대로 하여금 배신을 두려워하게 만들고, 협력하는 것이 모두에게도 유리하다는 점을 인지시킨다는 것에 있다. 상대의 인격이 어떻든 상관없다. ‘내가 배신하면 반드시 다음 판에 배신당한다. 반대로 내가 협력하면 반드시 상대가 다음 판에 협력으로 보답한다’는 확신이 있다면 상대는 협력이 배신보다 우수한 전략이라고 판단하고 자연스럽게 반칙을 멈춘다.

페어플레이는 한참 이르다
한국의 보수는 반칙과 속임수의 대가(大家)들이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최소한의 게임의 룰을 지키는 공정함을 기대할 수 있을까? 우리의 상식으로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게임 이론에 따르면 이 상상은 수정될 수 있다. 한국의 보수가 치졸한 반칙을 일삼는 이유는 하나다. 제대로 된 단죄와 보복을 당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친일을 해도 보복 당하지 않았다. 4.19혁명 때 효자동에서 학생들을 향해 발포를 명령했던 홍진기(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의 아버지) 당시 법무부 장관도 멀쩡하게 부활해 <중앙일보>를 창간했다. 강기훈 씨를 동료의 유서 대필범으로 몰았던 김기춘도 몇 년 전까지 대통령 옆에 붙어 온갖 악행을 주도했다. 모두 제대로 된 보복과 단죄를 당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진보는 ‘적어도 우리는 인간인데, 인간 말종인 저들과 똑같은 짓을 해서는 안 된다’는 신사도에 사로잡혔다. 그래서 단죄와 보복을 등한시한 결과 보수를 ‘쫄지 않는 반칙의 괴물’로 만들었다. 게임을 하면서 진보가 너무 안이했다는 이야기다.
보수가 미워서 단죄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제대로 된 단죄와 보복이 없으면 그들은 10년이 지나 또 저런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다. 이것은 한국 사회 전체적으로 볼 때에도 전혀 도움이 안 된다. 1987년 6월 항쟁 직후 리영희 선생께서 <동아일보>에 ‘기회주의와 지식인’이라는 칼럼을 쓴 적이 있다. 내용이 이렇다.
“지금은 관용과 타협, 화합과 망각에 못지않게 옳고 그름을 가리는 준엄한 민주주의적 정의(正義)가 확립돼야 할 때다. 페어플레이는 페어플레이를 이해하는 상대에게 적용될 때 비로소 공정한 게임을 기대할 수 있다. 페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

저들은 세월호 유족들을 미친개처럼 물어뜯었고, 감히 사람의 머리에 물대포를 직사해 숨지게 만든 뒤 뻔뻔스럽게 부검영장을 들고 영안실에 나타났다. 그것은 인간이 모습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우리의 게임 전략은 무엇이어야 하나?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똑같이 대해주는 것이다. 단언하는데, 이 과정에서 일말의 관용도 필요치 않다.
대통령 박근혜를 명예롭게 퇴진시키자는 이야기가 정치권에서 나오는 모양이다. 한 마디로 웃기는 이야기다. 세월호 희생자들과 백남기 선생의 죽음을 잠시 잊고 박근혜를 명예롭게 퇴진시켰다고 치자. 다음 판에 그들이 다시 집권했을 때 무슨 일이 생기겠나?

그들은 ‘반칙을 저질러도 보복 당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굳게 믿고 저런 짓을 또 할 것이다. 언젠가 보수가 집권했을 때 또 다른 세월호, 또 다른 백남기가 나오지 않으리라 보장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우리가 명색이 진보인데 과거는 잊고 먼저 용서하는 아량을 베풀자고? 우리가 먼저 페어플레이를 하자고? 천만의 말씀이다. 장담하는데 페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 그것도 한참 이르다!
-이완배기자 칼럼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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