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캐플러는 몸을 드러내는 일에 적극적이다. 젊은 시절에는 특별한 잡지의 모델을 하기도 했다. Spooky Ghostsulias 트위터 캡처
<사라진 맛있는 것들>
이건 뭐지? 분위기가 수상하다. 두리번 두리번. 우왕좌왕. 사람들이 뭔가를 찾아 헤맨다. 냉장고를 뒤적이고, 수납장을 열어본다. 테이블을 힐끗, 이곳저곳을 기웃거린다. 하지만 없다. 늘 있던 것, 꼭 있어야 할 것들이 사라졌다. 시원한 탄산음료, 달콤한 스낵들, 풍미를 돋우는 마요네즈, 버터, 잼. 모두 자취를 감췄다.
2015년 2월, 애리조나 캐멀백 랜치에서 생긴 일이다. 그곳은 다저스의 스프링캠프다.
“이봐, 누가 코스트코 좀 다녀와.” “난 치토스가 필요한데.” “가는 길에 스타벅스 좀 들려. 아이스 아메리카노 벤티 사이즈로 부탁해.” 그러나 모두가 안다. 그러면 안된다는 것을.
“치즈를 몰래 가져올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 어디 숨겨서라도 말이죠.” 스캇 밴 슬라이크가 ESPN에 털어놓은 얘기다. 하위 캔드릭도 마찬가지다. “메이플 시럽 말이예요. 꼭 필요하죠. 아침에 팬케이크를 먹는 데 그게 없으면 말이 되나요? 아니 흰 설탕도 안된대요. 젠장.”
고위층도 별 수 없다. 구단주 중 한 명 스탠 카스탠 회장은 수시로 기자들 방을 기웃거린다. 콜라, 레모네이드, 맥주를 얻기 위해서다.
이 무렵 선수단 식단이다. 유기농 돼지 갈비, 밖에서 키운 닭고기 가슴살, 유기농 감자, 유기농 볶은 아스파라거스…. 분명히 건강하고, 고급지다. 하지만 익숙치 않다. 잘 먹고, 힘이 나야 할텐데. 저걸 먹고 며칠이나 버틸까. 말은 못하고, 잔뜩 못마땅한 얼굴들이다.
‘이게 다 그 양반 때문이야.’ 뒷담화의 주인공, 게이브 캐플러다. 새로 부임한 육성담당 책임자다. 취임 일성이 식단의 혁명이다. 정크 푸드, 탄산음료는 절대 금지다. 유기농, 건강식만 허용된다.
<웨이트 할 곳 찾아 매일 뚜벅뚜벅>
그의 대학(무어 파크 컬리지) 시절이다. 당연히 야구 선수였다. 그런데 공부는 왜 그리 열심히 하는지. 수업도 빼먹는 법이 없다. 영양학 강의다. 거기서 큰 깨달음을 얻는다.
“이전의 어떤 교육과도 달랐죠. 이후로 인생이 완전히 달라졌죠. 훈련 뒤에 회복, 근육이 만들어지는 과정. 어떻게 칼로리를 보충하고, 무슨 단백질을 섭취해야 하는지 배웠어요. 맛을 느끼고, 허기를 채우기 위해서 먹는 게 아니죠. 식사란 연료를 보충하는 과정이죠.”
먹는 게 이 정도다. 훈련은 오죽했겠나. 마이저리그 시절에 대한 회고다. 디트로이트에서 57라운드에 지명했다. 전체로 따지면 1487번째다. 한마디로 까마득하다. 별 기대 없는 순번이다. 당연히 낮은 싱글A에서 시작했다.
“원정 경기 때면 걷는 게 일이죠. 머무는 호텔이 오죽했겠어요? 운동기구가 있을 리 없죠. 도착하면 전화번호책 부터 뒤적여요. (헬스) 체육관을 찾아서죠. 운이 좋으면 30분 안쪽이예요. 1~2시간 거리에 있어도 상관없어요. (차비 아끼려고) 뚜벅이로 다녔어요. 그래도 웨이트 트레이닝을 빼먹거나, 시간을 줄인 적은 없죠.”
<탬파베이 시절 연봉 끝자리 18달러>
엄청난 자기 관리다. 이 정도면 성공 못하는 게 이상하다. 몸이 점점 커지고, 비거리는 계속 늘었다. 그만큼 승승장구했다. 3년만에 콜업됐다. 하지만 벽은 높았다. 힘만으로 해결되는 건 아니다. 2~3년간의 짧은 풀타임, 20대 후반부터는 내리막이다. 타석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그러다 보니 이삿짐 센터와 친해졌다. 1, 2년에 한번씩 팀을 옮겼다. 마지막 팀이 탬파베이다. 2009년 계약서에 사인했다. 연봉이 특별하다. 100만18달러다. 그의 정체성이 드러난다. 끝에 붙은 18달러 말이다. '18'은 히브리어 ‘chai’와 같은 음가다. 생명을 뜻하는 단어다. 유태인들에게 행운의 상징이다.
당시 계약서의 갑(甲)이 있다. (물론 구단이지만) 앤드류 프리드먼 단장이다. 2년을 함께 했다. 길지 않은 기간이다. 하지만 둘 사이는 각별했으리라. 프리드먼 역시 유태계다. 무엇보다 캐플러의 철저함과 깊은 철학을 곁에서 지켜봤을 것이다.
이는 몇 년 뒤 현실로 나타난다. 2014년 10월. 프기꾼이 LA로 부임했다. 첫 작업이 프런트 오피스 정비다. 부단장격인 로건 화이트가 물러났다(샌디에이고행). 그 자리에 게이브 캐플러를 앉혔다. 육성담당 총괄이 됐다. 앞서 얘기한 바로 그 사건의 발단이다. 유기농 식단의 참사(?) 말이다.
사실 이건 수순이다. 포스트 (돈) 매팅리를 생각한 포석이다. 계약 기간이 1년 남았다. 그리고 예상대로 흘러갔다. 이듬해. 차기 감독 물망에 여럿이 올랐다. 가장 유력한 건 캐플러였다. 결정적이라는 보도도 있었다.
<다저스 감독 최종 후보에서 밀린 이유>
최종 후보로 2명이 남았다. 캐플러와 데이브 로버츠다. 처음에는 기우는 게임이라고 여겼다. 누가봐도 캐플러가 유리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결과가 뒤집혔다. ‘로버츠가 인터뷰(면접)를 기가 막히게 잘 했다.’ 그런 얘기가 흘러나왔다.
선뜻 납득이 어렵다. 프리젠테이션이라면 캐플러도 만만치 않다. FOX 스포츠 해설을 2년이나 했다. 게다가 세이버매트릭스에 대한 식견도 남다르다. 무엇보다 프리드먼 사장이 미는 사람 이었다. 그런데 왜?
여기서 부터는 사실과 별개다. 오로지 <…구라다>의 추론이다. 그냥 상상과 짐작으로 이뤄진 허구일 뿐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 막판 걸림돌은 혹시 정체성 아닐까. 그렇게 추측한다. 그는 꽤 적극적이다. 자신이 유태계라는 점을 부각시킨다. 연봉 계약의 18달러는 양념이다. WBC 때는 이스라엘 코치도 자청했다.
2015년 당시는 다저스의 오너십이 바뀐 지 얼마 안됐다. 아시다시피 구겐하임 파트너스라는 유태계 기업이다. 구단주 그룹의 대부분이 그쪽이다. CEO 회장 스탠 카스텐(기자실에서 콜라 찾던)도 유태인이다. 사장 앤드류 프리드먼도 마찬가지다. 만약 감독까지 그렇게 가면….
물론 그들의 유대감은 유명하다. 아마 어느 민족보다 특별할 것이다. 하지만 지나치면 곤란하다. ‘다양성’은 미국 사회의 중요한 가치다. 인종적, 민족적 독점은 법적인 이슈가 되기도 한다. 혹시 그래서가 아닐까. 그런 짐작이다.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 캐플러와 다저스>
어쨌든. 감독 선임은 막판 뒤집기로 끝났다. 패자는 3년뒤 필라델피아로 떠난다. 다시 2년 뒤. 이번에는 샌프란시스코에 자리가 생겼다. 장기집권 브루스 보치가 물러났다. 마침 실업자가 된 유기농 매니아가 입사지원서를 냈다.
구단주 그룹은 시큰둥했다. 여러 후보 중 하나 정도로 여겼다. 그런데 유독 적극적이 사람이 있었다. 파한 자이디 사장이다. 그는 이미 다저스 시절에 캐플러를 겪어봤다. 단장과 육성책임자였으니 직접적인 업무 관계였다.
결국 보치의 후임은 근육맨이 됐다. 1년간의 적응기가 있었다. 2년차인 올해. 리그 최고의 팀이 됐다. 106승 팀을 2위로 밀어냈다. 전체 승률 1위는 그들 차지였다. 그리고 이제 외나무 다리다. 캐플러와 다저스, 또는 캐플러와 로버츠는 운명의 경기를 갖는다. 디비전시리즈 최종 5차전이다.
(캐플러와 로버츠는 한 때 팀 메이트였다. 2004년 보스턴 레드삭스의 우승 멤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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