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복궁야경을 직접 카메라에 담았다.

글쓴이: 한마당  |  등록일: 11.28.2022 11:21:33  |  조회수: 1313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참  축복을 많이 받은 땅임에는 틀림이 없다.

도시 한복판에 여러개의 궁을 가지고 있고,뒤에는 북한산이 병풍처럼
들어서 있고,앞으론 한강이 말없이 흐르는 곳이다.

한국사람들은 세계 여러 나라와 비교해도 근면하고 심성이 착한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고국을 떠나 이국땅 미국에 살면서 많은 사람들을 접해보고 느낀 사실이다.

이런 나라에 요물들(?)이 갑자기 득세하여 신탁에 의지하기 시작하여                                                                   
 
국가의 앞날을 기약할 없는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잘못 된 것은 바로 고쳐야 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오래 방기하면 그대로 굳어져 아예 쓸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고려의 삼은 중 '야은 길재'가 허망하게 망한 국가를 보고 한탄하며
지은 시를 옮겨 본다.

                          오백 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DISCLAIMERS: 이 글은 개인회원이 직접 작성한 글로 내용에 대한 모든 책임은 작성자에게 있으며, 이 내용을 본 후 결정한 판단에 대한 책임은 게시물을 본 이용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라디오코리아는 이 글에 대한 내용을 보증하지 않으며, 이 정보를 사용하여 발생하는 결과에 대하여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습니다. 라디오코리아의 모든 게시물에 대해 게시자 동의없이 게시물의 전부 또는 일부를 수정 · 복제 · 배포 · 전송 등의 행위는 게시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으로 원칙적으로 금합니다. 이를 무시하고 무단으로 수정 · 복제 · 배포 · 전송하는 경우 저작재산권 침해의 이유로 법적조치를 통해 민, 형사상의 책임을 물을 수 있습니다. This article is written by an individual, and the author is full responsible for its content. The viewer / reader is responsible for the judgments made after viewing the contents. Radio Korea does not endorse the contents of the articles and assumes no responsibility for the consequences of using the information. In principle, all posts in Radio Korea are prohibited from modifying, copying, distributing, and transmitting all or part of the posts without the consent of the publisher. Any modification, duplication, distribution, or transmission without prior permission can subject you to civil and criminal liability.
댓글
  • 한마당  11.28.2022 11:24:00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소칠 아이는 여태 아니 일었느냐

    재 너머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나니.


    시조의 대명사처럼 널리 알려져 있는 작품이다. 작자는 남구만(南九萬·1629~1711). 호는 약천(藥泉), 미재(美齋). 당시 서인의 중심인물이었으며 문장과 서화에 뛰어났다. 효종 7년에 별시 문과에 급제, 함경도 관찰사를 거쳐 한성좌윤(漢城左尹)을 지냈고, 숙종 때 영의정까지 올랐다. 그는 법을 받들어 사사로움이 없었고 언제나 붕당(朋黨)을 염려하여 공의(公議)를 따랐다.

    1701년 희빈 장씨를 가볍게 처벌하자고 주장했으나 숙종이 사사(賜死)하기로 결정하자 사직하고 고향에 내려갔다. 그 뒤 유배, 파직 등의 파란을 겪다가 다시 등용되었으나 1707년 관직에서 물러나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저서로 『약천집』 『주역참동계주』(周易參同契註)가 전하고, 문하에 글 배우는 선비가 100여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시조로는 이 작품이 유일하게 전하는데 참 아쉬운 일이다.

  • 한마당  11.28.2022 11:25:00  

    '동쪽 창문이 밝았느냐 종달새가 우짖는다/ 소를 먹일 아이는 아직 일어나지 않았느냐/ 재 너머 있는 이랑이 긴 밭을 언제 갈려고 하는가'로 풀린다. 경쾌한 아침, 주인 영감은 일찍 잠이 깼는데 소 먹일 아이는 일어나지 않는다. 농촌의 봄은 할 일도 많은데 늦잠을 자고 있으니 걱정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