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미·중 사이에 낀 샌드위치 처지라는 데 동의할 수 없다. 우리 선택지는 명확하다. 중국의 눈치 볼 일 없이 미국과 더욱 밀착해야 한다."
임형규 전 SK텔레콤 ICT기술성장 총괄 부회장은 지난 19일 매일경제와 인터뷰에서 "반도체 산업에서 미국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임 전 부회장은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장과 최고기술책임자(CTO), 삼성종합기술원 원장 등을 거치면서 한국 반도체 업계 성장을 이끈 대표적 반도체 전문가다.
임 전 부회장은 반도체 기술 패권을 두고 미·중 갈등이 격화되면서 우리 반도체 산업을 둘러싼 분위기가 심상찮게 돌아가고 있는 것은 맞는다고 봤다. 다만 그렇다고 선택지가 중국이 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반도체 산업은 미국이 발명하고 발전시켜 온 산업이고, 시장 주도권은 물론 장비와 소프트웨어 등 핵심 기술까지 여전히 미국이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임 전 부회장은 "냉정하게 말해 중국은 우리에게 시장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며 "중국 반도체 산업 자체 역량이 부족한 만큼 칼자루는 한국 손에 있다"고 말했다. 과거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 후폭풍 속에서도 반도체 대중 수출은 오히려 늘었던 것처럼, 미국의 무역 제재로 인한 타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중국은 한국에서 반도체를 사 갈 수밖에 없는 처지라는 설명이다.
임 전 부회장은 중국은 놓쳐서는 안 되는 큰 시장인 만큼 불필요하게 자극할 필요는 없지만, 한국이 미국과 보조를 같이할 수밖에 없다는 점은 확실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이 동맹국인 한국에 기술을 전수해주며 역할을 부여한 덕분에 한국 반도체 산업이 성장할 수 있었던 만큼 오늘날 K반도체는 한미 동맹의 결과물이자 일환이라는 점을 중국에 이해시킬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해 임 전 부회장은 다음달로 예정된 한·미정상회담을 양국 간 반도체 동맹 강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반도체 기술 동맹을 군사 동맹 수준으로 강화하고 미국 내 투자 요구에도 적극 응하겠다는 의사를 밝힐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재 상황은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미국이 누르면서 한국에 시간을 벌어주는 형국"이라며 "이는 경쟁국과 격차를 벌릴 수 있는 둘도 없는 기회"라고 덧붙였다. 임 전 부회장은 이 같은 기회를 놓치지 않을 필요조건으로 '안정적인 오너 리더십'을 첫손에 꼽았다. 장기적으로 사람과 기술을 키우고 미래를 위해 과감한 투자를 감행할 수 있는 경영 주체가 필요한데, 이 같은 역할은 고 이병철 삼성 창업주나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처럼 장기적 비전을 가진 오너만이 맡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임 전 부회장은 한국 반도체 산업이 개척해야 할 분야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와 장비를 꼽았다.
그는 "파운드리에서 명실상부한 양강이 되기 위해서는 TSMC와 6대4 정도로 시장을 분점할 수 있어야 한다"며 "장기적으로 봤을 때 실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3개사가 시장을 과점하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와 달리 파운드리는 TSMC 독주 체제가 굳건하기 때문에 미국 등 주요국들이 공급망 위험을 줄이기 위해 삼성전자를 대안으로 지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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