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을 부활시킨' 스티브 잡스의 핵심 결단 7선

등록일: 07.29.2020 14:07:44  |  조회수: 1068
스티브 잡스는 15년 전 애플로 공식 복귀해 침체에 빠진 회사를 부활시켰다. 그는 애플의 임시 CEO에 오른 이후 8개월 동안 애플을 구하는 전략을 수립해 이행했다. 정확히는 1997년 9월 17일부터였다.

그가 초기 임시 CEO로 재직하는 동안 애플을 궤도에 올려놓은 7가지 핵심 의사결정들이 있다. 철저하면서도 완전한 연구 결과 같은 것은 아니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적용될 수 있는 경영 측면의 결정들에 대해 살펴봤다.
경영권 장악
스티브 잡스가 내린 가장 중요한 결정은 애플의 경영권을 다시 찾는 것이었다. 사실 꼭 그럴 필요는 없었다. 당시 애플의 CEO인 질 아멜리오는 1996년 말 넥스트(NeXT)를 인수한 직후인 1997년 1월 잡스를 특별 고문으로 영입했다. 따라서 잡스는 조언만 제시하면서 국외자 신분을 유지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건 잡스의 천성과는 거리가 있었다. 잡스는 애플 이사진을 설득해 아멜리오를 축출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임시 CEO에 임명됐다. 이사진은 잡스가 경영권을 다시 찾는데 동의했다.

군살 빼기
잡스 복귀 이전의 애플은 현기증 날 정도로 많고 다양한 서버, 노트북 컴퓨터, 각양각색의 맥킨토시 데스크톱 제품을 생산하고 있었다. 또 프린터와 디지털 카메라, 기타 주변기기를 생산했지만 수익은 미미한 실정이었다.

잡스는 애플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제품의 70% 이상을 없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뉴톤 PDA를 취소시킨 것이다. 이는 오늘 날에도 일부 사람들이 기억하는 제품이다.

맥킨토시 분야에서도 새롭게 출발을 했다. 그는4개 제품으로 맥킨토시의 미래를 표현했다. 2종의 소비자용 데스크톱과 포터블 컴퓨터(아이맥과 아이북), 2종의 전문가용 데스크톱과 포터블 컴퓨터(파워 맥킨토시와 파워북)이다. 여기에 부합하지 않는 제품은 버렸다.

그는 이 밖에 iCEO 임기 첫 1년 동안 3,000명 이상의 직원을 해고했다. 제품의 종류를 줄인 결과였다.  처음에는 고통을 가져온 이런 삭감을 통해 애플은 소수의 좋은 제품들에 집중할 수 있었다.

집안 청소
1996년, 애플 이사진의 대부분은 애플을 쪼개 비싼 가격에 매각하는 방법에만 신경을 쓰고 있었다. 잡스는 애플에 복귀하나 이후 긍정적인 태도를 보유하고 자신을 리더로 받들어줄 이사들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잡스는 단 몇 주 만에 애플 이사진 대부분을 사임시킬 수 있었다. 여기에는 1977년 애플 창업 과정에서 상당한 종자돈을 제공한 마이크 마쿨라 전임 CEO도 포함되어 있었다.

잡스는 자신의 친한 친구인 오라클의 래리 앨리슨 CEO와 애플의 빌 캠벨 전임 마케팅 담당 부사장을 그 자리에 앉혔다.

또 기업 자원을 두고 반목하고 경쟁했던 제품 중심 부서들을 일소하는 방식으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그리고 대신 전사적인 마케팅, 영업, 제조, 재무부서를 설치했다.

잡스는 또 임시 CEO로 임명되기 전, 질 아멜리오 CEO를 설득해 일부 넥스트 직원들을 애플의 중요한 자리에 앉혔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OS X 개발의 배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1997년 2월 소프트엔지니어링 부문의 수석 부사장으로 임명된 아비 테바니안과 같은 달 하드웨어 엔지니어링 부문 수석 부사장으로 합류한 존 루빈스타인이었다.

잡스는 이 밖에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에게 충실한 넥스트의 여러 베테랑 직원들과 간부급 직원들을 채용했다. 혁신적인 새 정책에 의문을 제기하는 경영진을 최소화하기 위해서였다.

누수 차단
질 아멜리오가 CEO가 재직하던 당시만 하더라도 CEO의 정책 결정을 바꾸기 위해 언론에 고의적으로 정보를 누출하는 내부 직원들이 있었다. 그러나 스티브 잡스 체제 아래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잡스는 잠정 CEO 자리를 승낙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애플 직원들이 언론과 접촉하는 행위를 전면 금지시켰다. 여기에 정리해고가 이어지면서 기업 내부의 반대세력들의 목소리가 잦아 들었다.

잡스는 수년간 언론 접촉 금지 정책을 유지하면서 제품 발표 시 놀라움과 긴장감, 비밀을 유지시키는 효과를 만들어냈다. 또 정보 유출을 엄격하게 관리하면서 IT 매체들을 좌지우지할 수 있었다.

적과 화해하다
초기의 스티브 잡스는 애플과 IBM의 대립으로 대변되는 PC 시장의 전쟁을 진두 지휘했다. 이는 IBM 호환 PC에 OS를 제공했고, 훗날 맥킨토시 OS와 닮은 윈도우를 생산한 마이크로소프트와의 경쟁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애 플과 시장 지배자인 마이크로소프트 사이의 앙금은 잡스가 애플에서 사임한 1985년을 넘어서까지 계속됐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윈텔의 모든 것을 혐오하는 것이 애플의 문화로 자리잡았을 정도였다. 이러한 가운데 맥킨토시의 시장 점유율은 한 자리 수로 급락을 했다.

1996 년, 잡스는 데스크톱 PC 전쟁이 끝났으며 마이크로소프트가 승자라는 사실을 순순히 수용했다. 잡스는 이길 수 없는 마이크로소프트와의 전쟁에 돈과 에너지를 쏟아 붓는 것은 비생산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애플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경쟁을 해야 했다. 잡스은 마이크로소프트를 자신의 편으로 삼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상호 특허 사용 허가에 입각해 최소 5년간 맥킨토시용 오피스와 인터넷 익스플로러 개발을 위해 상당한 인력을 제공하기로 약속했다. 또 애플의 성공을 돕기 위해 애플 주식 1억5,000만 달러를 인수하기로 약정을 맺었다. 애플은 이에 대한 대가로 5년간 맥 OS의 기본 브라우저로 익스플로러를 사용하기로 계약을 체결했다.

1997년 보스톤에서 열린 맥월드에서 잡스가 체결하고 공식 발표한 이 계약은 맥을 추종하는 사람들에게 이제 그만 화해하라는 발표이기도 했다.

마이크로소프트에 대한 잡스의 태도 변화는 애플이 에너지를 효율화하는 역할을 했다. 개발자와 추종자 모두 자신들의 앞에 기다리고 있는 신시장을 정복하기 위해 전진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맥 호환 기종 죽이기
1994 년, 애플은 몇몇 벤더를 소수 선정해 기계당 90달러를 내면 맥 OS를 사용할 수 있도록 라이선싱을 내주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 수록 좋은 생각이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이들 복제품 제조업체들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제품을 생산해 애플의 가장 수익성 높은 사업 부문을 침식해왔다. 또 애플 플랫폼을 확대하겠다는 당초의 목표도 충족시키지 못했다.

이런 이유로, 잡스는 애플에 복귀했을 때, 맥 OS 라이선싱 프로그램을 없애야 한다고 생각을 했다. 그는 1997년 출시된 맥 OS 8 운영체계를 벤더들에게 라이선싱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를 통해 복제 프로그램을 종식시켰다 (UMAX의 경우 1998년까지 OS 8 프로그램을 사용했다.)

잡스는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용자 체험을 강하게 관리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를 위해서는 하드웨어가 애플의 손아귀에 있어야만 했다. 복제품이 맥킨토시 브랜드를 희석시키고, 그 상태가 유지됐다면, 애플은 지금과 같은 비밀 전략, 고객 호응, 고품질 제품이라는 성과를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조나단 이브에 대한 신뢰
스티브 잡스가 1996년 애플로 복귀했을 당시 조나단 이브는 이미 디자인 팀을 책임지고 있었다. 그는 사실 퇴사를 생각하고 있었다. 잡스 또한 처음에는 외부의 스타 디자이너를 영입해 디자인 팀을 맡기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었다.

그러나 잡스는 곧 조나단 이브와 의기투합했고 개인적으로 친구가 됐다. 이들은 서로가 디자인 철학의 핵심 부분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스티브 잡스는 외부에서 새로운 인재를 채용하는 대신 상대적으로 검증이 되지 않은 조나단 이브를 신뢰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디자인 팀 전체의 도움을 받아) 역대 최고의 인기를 누린 소비자 전자제품군을 창조해냈다.

<출처  : CIO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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