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은 종종 기술만으로 성장하지 않는다. 창업자나 리더의 유명세나 성격 덕분에 명성을 얻는 경우도 있다.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가 그런 초기 사례로 잘 알려진 인물들이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창업자나 CEO의 이미지가 회사에 심각한 피해를 주는 정반대의 효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현재 눈에 띄는 사례는 일론 머스크인데, 그가 우익 음모론을 받아들이면서 회사에는 큰 해를 끼치고 있다. 잠재 고객이기도 한 상당수의 진보주의자 혹은 자유주의자가 불매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반면 마이크로소프트 CEO 사티아 나델라는 화려한 리더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는 인물이다. 그는 특별한 드라마가 없는 기술 전문가로 대중의 시선을 별로 끌지 않는다. 공개석상에 나타날 때도 마찬가지다. 나델라는 매력적인 인물이라기보다는 영리함, 비전, 뛰어난 관리 능력을 가진 인물이며, 이를 통해 마이크로소프트를 위기에서 구했다.
그간 마이크로소프트를 최대 AI 기업으로 만드는 데 기여한 또 다른 인물은 오픈AI 설립자이자 CEO인 샘 알트먼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오픈AI에 130억 달러를 투자했으며, 오픈AI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생성형 AI 도구 코파일럿의 기반이 되는 기술을 개발했다.
알트먼은 미디어, 의회, 그리고 그 밖의 많은 곳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미스터 AI’, 생성형 AI 하면 대중이 떠올리는 대표적 인물이었다. 그는 AI가 지금처럼 인기를 얻고 도약할 수 있었던 이유 그 자체이기도 하다.
지금까지는 알트먼의 행보가 마이크로소프트에게 큰 도움이 됐다. 그가 AI를 더 밀어붙일수록 마이크로소프트도 더 많은 이득을 얻었다.
하지만 그 시기가 끝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최근 알트먼은 배우 스칼렛 요한슨의 목소리를 허락 없이 개인 AI 비서의 오디오 인터페이스로 사용했다는 의혹으로 비난을 받았다. 여기에 AI가 파괴적으로 변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저버린 것에 대한 비난이 더해져 타격을 받고 있는 듯 보인다.
지금까지는 도움이 됐던 알트먼이 ‘독’이 된다면 마이크로소프트는 어떻게 할까? 지원을 2배 늘릴까, 아니면 가능한 한 빨리 그를 정리하려고 할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 알트먼의 최근 논란을 살펴보고 마이크로소프트의 대응 가능성을 알아보고자 한다.
강자의 추락은 빠르다 최근까지만 해도 알트먼은 AI의 친절한 얼굴을 상징했고, AI가 어떻게 작동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고 싶어 하는 의원들이 찾는 전문가였다. 또한 AI가 인류를 파괴할 수 있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이 많으니 지금부터 준비하자고 독려하고 걱정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다 지난해 11월 오픈AI 이사회는 “이사회와의 소통에서 일관되게 솔직하지 않았다”라는 이유로 알트먼을 해임했다. 논란이 불거졌지만 이는 곧 수그러들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알트먼을 AI 연구팀 책임자로 채용하겠다고 제안하며 강력히 옹호했고, 투자자와 직원들도 항의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알트먼은 5일 만에 오픈AI CEO로 복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상황은 최근 들어 꼬이기 시작했다. 논란은 배우 스칼렛 요한슨이 오픈AI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무단으로 복사해 회사의 개인용 AI 비서인 스카이(Sky)의 목소리로 사용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요한슨은 자신이 영화 ‘그녀(Her)’에서 AI 비서 주인공 목소리를 연기했기 때문에 알트먼이 스카이에 이를 사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요한슨은 알트먼의 제안을 한 차례 거절했지만 재차 연락을 받았다고 말했다. 요한슨에 따르면 두 번째 제안에 답장을 하기도 전에 공개 데모가 나왔고, 데모 속 AI 비서의 목소리는 요한슨의 목소리와 거의 같았다. 요한슨은 데모 공개 직전 알트먼이 X에 ‘그녀’라는 한 단어만 남긴 것을 근거로 제시했다.
요한슨은 “공개된 데모를 들었을 때, 알트먼이 나와 너무나도 비슷하게 들리는 목소리를 추구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고 화가 났다. 내 목소리와 너무 비슷해서 가까운 친구들과 뉴스 매체도 이를 구분할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알트먼은 요한슨의 주장을 부인했지만, 논란 이후 오픈AI는 별다른 설명 없이 스카이에서 음성을 삭제했다.
몇몇 사람들은 알트먼의 행동에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으나, 이런 반응은 지금까지 그들이 충분한 관심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일 뿐이다. 챗GPT와 코파일럿이 구축된 기반 자체가 지적 재산권 도용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모든 대규모 언어 모델(LLM)이 마찬가지로 학습을 위해서는 방대한 양의 텍스트가 필요하다. 알트먼 체제하에서 챗GPT는 저작권 및 라이선스 여부에 관계없이 찾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수집한다. 이에 뉴욕타임스, 시카고 트리뷴, 코미디언 사라 실버맨, 소설가 조디 피코와 조지 R.R 마틴 등 지적 재산권 도용 혐의로 오픈AI에 소송을 제기하는 사례가 급증했다.
소송에 대한 알트먼의 대응은 ‘변호사 30여 명 고용’으로 압축할 수 있다.
이 사건은 시작에 불과했다. 지금껏 알트먼은 스스로를 AI의 윤리적 얼굴로 내세웠다. 그는 AI가 무분별하게 개발될 경우 인류에게 실존적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수차례 경고하며,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보호 장치를 마련할 것을 정부와 다른 대기업에 촉구해 왔다. 의회 의원들과 사람들이 그를 따랐는 이유도 그가 단순한 돈벌이꾼이 아니라 인류를 위해 AI가 할 수 있는 좋은 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오픈AI는 2015년 비영리 기업으로 출발했다. 이때 알트먼과 다른 창립자들은 “금전적 수익 창출에 얽매이지 않고 인류 전체에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AI를 사용하는 것”을 설립 목표로 내세웠다.
알트먼은 공개석상에서 AI가 무분별하게 개발될 경우 인류에게 실존적 위협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해 왔지만, 이는 공개적인 자리에서만 해당되는 이야기다. 뒤에서는 어떤 결과가 나오든 AI 개발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최근에는 AI가 초래할 장기적 위험에 대응하는 팀인 ‘초정렬(Superalignment)’ 팀도 해체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후 회사의 연구원들이 사임했고, 일부는 윤리적이고 안전하게 AI를 개발하겠다는 약속을 저버렸다며 알트먼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최고 연구원이자 팀의 공동 리더였던 얀 라이크는 퇴사하면서 오픈AI의 “안전 문화와 프로세스가 제품의 뒷전으로 밀려났다”라고 말했다. 오픈AI의 공동 창립자이자 수석 과학자였던 일리야 수츠케버도 최근 사임했다. 직접 이유를 밝히지는 않았으나, 그는 몇 달 전 알트먼을 해고하는 데 투표한 이사회 멤버 중 한 명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대응은?
마이크로소프트와 오픈AI의 긴밀한 관계를 고려할 때 그의 행보는 충분히 해가 될 수 있다. 지금은 마이크로소프트가 AI 분야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기술 분야는 빠르게 변화한다. 또한 많은 기업과 개인이 AI의 결과와 안전성, 윤리를 우려하고 있기 때문에 신뢰 가능한 회사의 AI를 사용하기를 원한다.
연구원들의 연이은 퇴사 이후 오픈AI는 AI 모델의 안전과 보안을 감독하는 새로운 위원회를 설립했다. 이는 고객의 의구심을 어느 정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알트먼을 신뢰할 수 없다고 판단하면 고객은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쟁 업체로 옮겨갈 가능성도 있다.
알트먼의 대중적 이미지가 더 나빠진다면 마이크로소프트는 조치를 취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전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마이크로소프트는 오픈AI와 거리를 둔 독자적인 행보를 준비하고 있다. 최근에는 구글이 2014년 인수한 AI 스타트업 딥마인드의 공동 창업자 출신 무스타파 술레이만이 이끄는 자체 내부 AI 팀을 구축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델라는 “내일 오픈AI가 사라지더라도 … 우리는 모든 지적 재산권과 역량을 갖추고 있다. 인력도 있고, 컴퓨팅도 있고, 데이터도 있고, 모든 것을 갖췄다. 우리는 오픈AI의 아래에 있기도, 위에 있기도, 주변에 있기도 하다”라며 장기적으로 마이크로소프트가 오픈AI와 결별할 수 있음을 분명하게 밝혔다.
필요하다면 나델라는 알트먼을 끌어내릴 수도 있을 것이다. 알트먼은 자신이 마이크로소프트와 맞설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틀린 판단일 가능성이 높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강력한 AI 기업이다. 다시 말해 이는 둘의 대결에서 항상 마이크로소프트가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