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기업들이 진행했던 ‘줌(Zoom)’ 테스트는 실패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모든 사람을 지치게 하고 비생산적으로 만들면서 원격근무의 이점을 상쇄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전 세계를 강타했다. 코로나바이러스 확산 방지를 위해 재택근무를 시행하는 기업이 많아졌고, 모두가 줌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사장, 임원, 팀장 등 사무실 근무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원격근무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들은 대면 회의 및 보고,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 등 사무실 근무의 특징을 가장 근접하게 재현하는 것처럼 보이는 ‘줌’에 주목했다.
결과적으로 대규모 회의 혹은 심지어 중간 규모의 회의에서 줌을 사용하는 것이 불쾌하고 비생산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론상으로 보면 줌은 나쁘지 않다. 모두가 동시에 서로를 보고 들을 수 있고, 전사적으로 재택근무를 하는 동안 대면 미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수많은 줌 화상회의로 ‘줌 피로(Zoom fatigue)’가 나타났으며, 득보다 실이 많은 현상이 이어졌다. 줌으로 화상회의를 한 뒤에 몰려오는 피로하고 고갈된 느낌은 아래와 같은 여러 기술적 및 심리적 요인이 원인이다.
• 화상회의 중에 사용자마다 지연 속도가 서로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이로 인해 대화가 끊겨 불편한 것은 물론 혼선이 발생할 수 있다. 지연 때문에 상대방이 덜 친절하거나 혹은 집중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 화면에 나오는 자신을 보는 것이 스트레스를 줄 수 있다.
• 싱크가 맞지 않는 영상과 음성을 이해하기 위해 더 많은 집중력이 요구된다.
• 화상회의에 참여한 모두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고 무의식적으로 인식하게 된다. 다른 사람이 발언하는 순간에도 모두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 화면을 보면서 눈을 맞추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카메라만 응시하게 된다. 이는 불안을 야기할 수 있다.
• 한 번에 많은 사람의 얼굴을 보는 것은 정신적 과부하를 일으킨다. 뇌가 여러 명의 얼굴을 신속하게 인식하는 데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기 때문이다. 또한 십여 명의 얼굴이 계속 전환되는 화면을 몇 시간 동안 보는 것은 뇌에 상당한 부담을 준다.
• 한 연구에 따르면 영상통화를 할 때 대화 내용 자체보다는 상대방의 의중을 파악하는 데 더 집중한다.
• 영상통화에 대한 신뢰도가 낮은 경향이 있다. 또한 영상으로는 대화 전달이 잘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 영상통화 내내 화면에 시선을 고정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낀다.
그렇다. 줌 피로는 현실이다.
그런데 왜 줌을 사용하는가? 줌의 하루 사용자 수는 2019년 12월 1,000만 명에서 2020년 4월 3억 명 이상으로 급증했다. 줌은 다른 대안들보다 화상회의에 약간 더 특화돼 있었고 조금 더 사용하기 쉬웠을 뿐이다. 심지어 보안은 매우 취약했다. 하지만 군중심리가 대다수로 하여금 아무 생각 없이 줌을 사용하도록 이끌었다.
필자는 약 16년 동안 원격으로 근무해왔고, 코로나 팬데믹 이전에도 원격으로 일하는 사람들은 많았다.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매일같이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과 만난다. 대기업은 여러 지역에 진출해 있고, 서로 다른 지역에 있는 사람들 사이의 회의는 일상적이다. 사람들은 항상 고객, 파트너, 서비스 업체 등을 원격으로 만났다.
즉 화상회의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우리는 줌을 과도하게 사용하거나 줌으로 인한 피로감을 느끼지 않으면서 이미 여러 해 동안 원격회의를 해왔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줌을 많이 사용하게 됐는가? 그 이유는 원격근무를 선호하지 않는 사람들이 원격근무를 하게 됐고, 이들이 줌 사용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사무실에서 근무할 것인지 아니면 원격근무를 할 것인지는 성격에 따라 달라진다. 이를테면 본사에서 일하는 사람이 있고, 지사에서 일하는 사람도 있다. 실제로 사람들과 만나 미팅을 하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 있고, 원격회의가 더 편안한 사람도 있다. 즉 대체로 내성적인 사람들은 원격 또는 재택근무를 지향했고, 대부분 그렇게 됐다. 이 가운데 재택근무 또는 해외에서의 원격근무를 위해 급여와 직급을 희생한 사람도 많다. 외향적이고 주변 동료들에게 자극을 받는 스타일의 사람들은 원격근무를 지양했다. 이들은 사무실 근무, 가급적이면 본사 근무를 하려고 했다.
이들 간의 균형이 존재했다. 사무실 또는 원격근무자는 둘 다 자신의 업무 장소에 만족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이 균형을 무너뜨렸다. 사장, 임원, 팀장 등 사무실 근무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원격근무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들은 대면 회의 및 보고,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 등 사무실 근무의 특징을 가장 근접하게 재현하는 것처럼 보이는 ‘줌’에 주목했다.
결과적으로 줌은 이론적으로는 그럴듯해 보였다. 하지만 사실상 비생산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대안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 팟캐스트라면 피로감을 느끼지 않고도 몇 시간을 청취할 수 있다. 그러나 줌은 다르다. 줌으로 한 시간만 영상통화를 하면 고갈되고 지치는 느낌이 든다 줌 대신에 지연 속도가 낮은 음성 통화를 기본으로 이용하는 것이 어떨까?
개인적인 경험에 비춰볼 때 줌 영상통화는 4인 이하의 사람들이 30분 이내로 짧게 하는 것을 권장한다. 또한 가급적 이메일을 사용하고 필요할 때는 음성 통화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말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만 줌을 사용해야 한다.
물론 음성 통화에도 문제는 있다. 4명 이상이 컨퍼런스 콜을 한다면 누가 말을 하는지 불분명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화자가 식별되는 음성 통화를 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
한 가지 해결책은 미래 인터넷 커뮤니케이션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할 '아바타'를 이용하는 것이다. 아바타는 사용자의 표정과 몸짓을 실시간으로 흉내 내는 '가상의 나'이다. 사용자의 실제 영상이 아니다.
이를 통해 지연 속도를 줄이고, 화자를 식별할 수 있으며, 시각 정보 처리를 단순화하고, 카메라 앞에 있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없앨 수 있다. 또한 실제 사람이 아닌 아바타의 눈을 마주치기 때문에 스트레스도 덜하다. 즉 아바타 기반의 '화상회의'는 화자가 식별되고 비언어적 표현을 전달할 수 있는 컨퍼런스 콜인 셈이다.
미국 스타트업 룸.ai(Loom.ai)는 최근 루미라이브(LoomieLive)라는 앱을 출시했다. 사용자가 화상회의에서 자신을 대신하는 아바타를 생성할 수 있도록 해주는 앱이다.
아바타를 통해 표정을 실시간으로 전달하는 것은 물론 사용자가 커피를 마시면서 메모를 읽더라도 계속 카메라를 주시하도록 할 수 있다. 해당 앱은 줌, 구글 행아웃, 스카이프, 웹엑스, 마이크로소프트 팀즈와 함께 사용할 수 있다.
또한 애플이 화상회의를 위한 아바타를 지원할 것으로 전망된다. 애플은 2020년 WWDC를 온라인으로 개최한다고 밝히면서 3명의 미모지(Memoji) 캐릭터가 맥북 앞에 앉아있는 광고 이미지를 함께 공개했다. 미모지는 애플 사용자가 애플 메시지 앱에서 생성할 수 있는 아바타다.
별 의미 없는 광고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애플은 비밀스럽지만 상징성을 가진 광고로 유명하다. 애플이 아바타를 지원할 계획이 없다면 노트북 앞에 앉아 있는 미모지 캐릭터를 굳이 보여줄 까닭이 없을 것이다. 따라서 애플이 이번 WWDC에서 아래의 사항을 발표할 것이라는 예측은 타당해 보인다.
1. 노트북용 페이스 ID(아바타 제어 가능) 2. 노트북 상의 미모지 지원(줌의 뜨거운 인기를 고려할 때) 3. 화상회의에서 미모지 지원
게다가 애플은 증강현실 글래스를 개발 중이고, 3D 아바타 관련 특허를 가지고 있다. 이를테면 다른 사람의 아바타를 만나 눈을 마주치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인데, 애플은 이를 ‘바이오닉 버추얼 미팅룸(bionic virtual meeting room)’이라고 부른다.
페이스북도 여기에 뛰어들고 있다. 페이스북은 미국 사용자가 페이스북 메신저와 스토리에서 사용할 수 있는 아바타를 내놓았다. (이전에는 다른 영어권 국가와 유럽에서 사용 가능했다). 이 아바타를 그룹 화상채팅에 도입하는 것은 그저 시간문제일 뿐이다.
줌을 과도하게 사용하는 것은 효율적이지 않다. 줌 피로가 생산성을 해친다. 조직 차원에서 이를 인지하고 다시 변화를 주도해야 한다. 사람들은 원격근무 시 이메일, 전화, 아바타 기반의 영상통화를 선호할 가능성이 크다. 화상회의는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이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