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최영호입니다.
한국 김대중 전 대통령이 별세한지도 5년 반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70년대부터 한국 민주화 운동의 투사로 활약하던 김대중 전 대통령을 가까운 곳에서 취재하던 외국 언론인 중에 뉴욕타임즈의 동경 특파원을 지낸 헨리 스캇 스톡스란 사람이 있습니다. 이 특파원은 당시 김대중이란 인간에 매료돼 무려30회 이상에 걸쳐 인터뷰를 가지면서 전 세계에 외로운 투쟁을 벌이고 있는 김대중을 알리는데 앞장 선 사람입니다. 2000년도엔 광주민주화 운동에 대한 책을 뉴욕에서 출간했는데,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직접 쓴 서문이 책 맨 앞장에 자리잡고 있을 정도로 두 사람의 친분은 막강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가깝던 이 사람이 일본에서 새로 책을 집필했는데, 자신이 그동안 속았다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카멜레온같은 정치인이며, 민주화 운동의 투사를 가장한 정치인으로, 광주 사건을 사주한 장본인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자신은 저널리스트로서의 예전 과오가 부끄럽다는 내용도 적고 있어 참으로 충격적입니다.
3월 첫째 주말에 보내드리는 최영호의 Weekend Special, 오늘은 ‘김대중 전 대통령은 사리사욕에 눈 먼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헨리 스캇 스톡스 전 뉴욕타임즈 동경특파원의 책 내용을 알아봅니다. 양준용 고문 함께 합니다. 어서 오십시오.
사리사욕에 눈 멀었던 김대중
(Henry Scott-Stokes 전 뉴욕 타임즈 동경. 서울 주재 특파원이 저술한 한 저서 중에서)
카메레온과 같았던 정치인 김대중
김대중 한국 대통령은 2000년에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이 해에 한국의 대통령 중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 남북간의 긴장 완화에 공적을 남겼다는게 수상 이유였다.
그런데 오늘날 남북관계가 조금이라도 개선되었다고 말할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어떻든 노벨 평화상이란 상은 적당히 주고 받는 상인 모양이다.
2009년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이 상을 받았었다. 대단한 인기를 안고 대통령에 취임한 그는 취임 8개월반만에 이 상을 수상했다. 독일 베르린에서의 연설에서 핵무기 근절을 호소 했다는게 수상 이유였다. 그렇다면 <지상에서 병마를 영구히 추방한다>고 큰 소리를 쳤어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할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하게 한다.
2013년의 노벨 평화상은 화학무기 금지조약에 의해서 설립된 화학무기 금지기관인 OPCW가 수상했다. 시리아가 화학무기를 포기하겠다고 약속한 직후였기 때문에 주목을 받았었다. 그러나 시리아의 독 가스 무기의 제거작업은 다만시작만 했을 뿐 그 작업이 성공적으로 진행될 것인가의 여부는 의심스러웠을 따름이다.
그 전 해에는 유럽 공동체가 수상했다. 그런데 유럽 공동체 역시 경제 파탄의 소용도리에 휩쓸려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나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취재를 위해 30회 이상 단독으로 만났다. 아마도 내가 인터뷰한 아시아의 요인들중에서 가장 횟수가 많았던것 같다.
김대중씨는 한국의 서남부 전라남도의 하의도 출신이다. 그는 매스컴이 자신을 어떻게 다루는가에 대해 필요 이상으로 민감하게 신경을 쓰는 사람이었다. 코미디언들 처럼 장면 장면 마다 화장을 바꾸며 , 상황에 따라 자신을 변신하는 카메레온(chameleon, 주위의 환경에 따라 몸의 색갈을 자유자재로 변화시키는 새의 총칭)과 같은 변신의 달인이었다. …
전 생애를 통해 가장 극적으로 연출한 것은 그가 한국의 현직 대통령으로 북한을 처음 방문했을때의 일이었다. 바로 이 북한 방문이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민주화 운동의 투사를 가장한 김대중
내가 그를 처음 만난것은 그가 아직 야당생활을 하던 70년대 였다. 그는 미국과 일본에 체재하면서 한국의 민주화 운동을 추진하는 한편 인권활동가로서도 활약 해 주목을 받았다.
73년 8월 김대중씨는 동경의 구단시타에 있는 그랜드 팔레스 호텔에서 행방불명이 되었다. 한국 중앙정보부가 그를 납치한 것으로 뒤에 밝혀 졌다. 일본의 한 항구를 출항한 화물선에서 그를 수장하려 했지만 바로 그 시각에 군용기가 상공에서 감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살해의도는 중지되었다. (역자 주:이 주장은 김대중씨의 증언에 의한 것이지만 관계자들의 증언으로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