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당

  • 방송시간 (월∼금) 10:00 am ∼ 12:00 pm
  • 진행 김형준 · 우정아
  • 프로듀서 제작국
  • 우편주소 3700 Wilshire Blvd. #600 Los Angeles CA 90010
    아침마당 담당자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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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 고구마

글쓴이: Donquejote  |  등록일: 10.30.2013 15:08:22  |  조회수: 3166
우정아, 김형준 님,

맛깔나게 진행하시는 아침마당을 들으며 생각하고 반추하고 삶의 방향을 잡아가는 애청자  Helen 이라 합니다.
이번 달 주제인 ‘니가 영어를 알아?’와 맞지 않고 그렇다고 재미가 있거나 깊은 감동을 주는 얘기도 못 되는 것이지만 언제고 꼭 한번 들려주셔서 많은 사람들이 알도록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TV를 보다가 짜증이 나면서 눈물이 왈칵 솟았습니다.
연속극에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가 표현되고 있었는데, 물건을 어디에 두었는지 모르고 길을 잃고 사람을 몰라보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치매에 걸렸다는 그 어머니는 이따금 정신줄을 놓치는 것일 뿐 평소에는 너무나 단정하였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정신이 아주 캄캄하다 못해 하는 짓 (짓이라 하는 것이 자식으로서 몹쓸 말이라는 것을 알지만 이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음을 이해해 주세요.)마다 마귀할멈 같은데... 너네들이 치매가 얼마나 지독한 아픔인지 알기나 해? 듣고 상상한 것만으로 그려 낸 극일뿐이라는 것을 빤히 알면서도 괜스런 울화에 틱틱대었습니다.

방 청소를 하려는 며느릴 물어 내 쫓는 노망난 노인네였고,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것은 기본인데다 방안 이곳저곳에다 김치, 밥 등을 감추는 바람에 온 집안이 악취가 없어지지 않더랬지요. 더는 못 견디겠노라 울며 하소연하는 아내와 아이들을 대하며 곧 내린 핏줄이 저 밖에 없는 것이 한스럽고 패륜에 찢어지는 가슴이지만 솔직히 이제 그만 천당 가셔서 모두 좀 편했으면 하기도 했습니다. 

"누가 보기 전에 얼른 묵어라."
어디다 두었다가 어떻게 생각해 내셨을까? 어머니가 느닷없이 고구마 한쪽을 내미셨습니다.
쉰내가 코를 찔러 마다는 나에게 한사코 내미시는 어머니의 고구마 한쪽을 받아들며
옆집 애 고구마를 뺐다 받았던 고릿적 꾸지람이 물컹 목을 차올랐습니다.
"그기 그리 묵고 싶더나?" 30년이 넘도록 저를 혼내실 때마다 우려먹던 어머니셨습니다.
눈물 섞어 삼키는 쉰 고구마에서 진득하니 진이 늘어졌습니다.
이 진은 무엇일까요? 엄니의 끈적한 사랑인가요? 아니면 저의 불효한 회한이 이렇게 늘어지는 것일까요?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흘렀고 저도 모르게 어머니가 불쌍한 생각이 들어 껴안는데 나직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조용하지만 정이 가득한 목소리, 그랬습니다. 제게는 영원히 잊어지지 않을 어머니의 음성에 틀림이 없었습니다. 
아들, 왜 이리 슬퍼? 누가 때릴라 그래? 911 돌릴까? 하얗던 어머니가 번뜻 아들을 기억해 냈었습니다.

토악질이 나고 어지러운 이곳에서 당신을 아파해야 할 아침을 이어갈 까닭이 없다시며 벗어나고 싶다, 이제는 영원히 잠들어 편히 쉬고 싶다. 그래도 예쁘게 하고 네 아버지 만나야지.
그날 어머니는 화장까지 곱게 하고는 착한 아기처럼 잠자리에 드셨기에 정말 온 가족 모두가 어머니의 회복을 기뻐하며 감사기도를 드렸는데 어둠이 채 걷혀지기도 전에 어머니는 가위 눌린 듯 버둥대며 깨셨습니다. 다시 그 까맣게 어두운 어머니로. 그것으로 어머니의 기억은 그만 이었습니다.

그러고도 이년이 더 넘도록 어머니는 아프셨지요.
그동안 정신 놓아 받는 구박이더라도 오래만 사세요, 착한 자식 되고 싶다가도 원망에 미움에 심살을 저질렀던 게 몇 차례였던 지를 모릅니다.
이제는 편안한 곳으로 가셨기에 이리 말이라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김형준, 우정아 님,
치매가 극에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본인뿐만 아니라 온 가족 모두가 너무나 아픈 병이라 알리고 싶었습니다. 우리 환자만 유별나게 왜 이리 심하지 생각하지 않기를, 훨씬 더 심각한 환자와 가족이 많다는 것을 알려드리며 조금이나마 힘내시라는 마음에서였습니다.
 
그리고 불효막심하게도 마귀할멈보다 더 심하다고 원망만 입에 담았던 어머니가 가시고 난 지금, 저는 정신 놓쳤던 그 어머니가 건네주시던 쉰 고구마가 너무 먹고 싶습니다. 그 쉰 고구마에서 묻어나던 진이 너무 생생합니다. 그 어머니가 너무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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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orning Garden  10.31.2013 00:07:00  

    돈키호테님

    올려주신 글 읽으면서
    치매로 고생하시다 얼마전에 돌아가신
    저희 엄마 생각나 또 울었습니다

    심장마비로 병원에 들어가셨는데
    의식이 계신데도
    감은 눈을 뜨지를 않으셨답니다

    그렇게 기억도,의식도 없이 연명한다는게
    당신에게 너무도 치욕스런 삶이셨기에
    살고자 하는 의지를 스스로 놓으셨나 봅니다

    모든 어머니가 그렇듯이
    당신 역시
    자식들에게 끝까지 고운 모습으로 남고 싶으셨고
    더는 부담주고 싶지 않으셨던가 봅니다.

    시간 마련해서 함께 나눠보겠습니다
    소개하면서 혹시 제가 또 울더라도
    그래서 깊은 사연, 제대로 읽지 못하더라도
    널리 헤아리시길.
    감사합니다

    김형준 절.

  • ddungsmom  10.31.2013 09:06:00  

    토닥토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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