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유명 탐사보도 프로그램 진행자의 차가 폭발물 테러의 표적이 됐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으나 언론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위협에 이탈리아 사회가 충격에 빠졌다.
17일(현지시간) 프랑스 일간 르몽드에 따르면 전날 밤 10시께 이탈리아 공영방송 라이(RAI)의 탐사보도 프로그램 '리포트'를 진행하는 시그프리도 라누치 기자의 집 앞에서 그의 차가 폭발로 크게 파손됐다.
라누치 기자는 이탈리아 매체들과 인터뷰에서 "폭발 몇 분 전 딸이 내 차 앞을 지나갔다. 딸이 죽을 수도 있었다"며 "그들은 최소 1㎏의 폭발물을 사용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여름엔 집 앞에서 P38 권총 탄환 두 발이 발견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독일제 권총인 P38은 1970∼80년대 이탈리아 폭력 사태를 상징하는 무기다.
라누치 기자는 "그 후 지난 몇 달간 특이한 상황이 이어졌는데, 그 첫 번째는 바로 나에 대한 명예훼손 시도였다"며 "이번 공격은 며칠 전 리포트의 새로운 조사 주제를 발표한 것과 연관 있어 보인다"고 주장했다.
시그프리도 라누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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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누치 기자를 겨냥한 이번 차량 폭탄 테러에 이탈리아 사회는 민감하게 반응했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성명에서 라누치 기자에게 연대를 표하며 "정보의 자유와 독립성은 우리 민주주의의 포기할 수 없는 가치이며 우리는 이를 계속해서 수호할 것"이라고 밝혔다.
의회의 RAI 감시 위원장인 바르바라 플로리디아 상원 의원도 "민주주의와 언론 자유에 대한 테러 행위"라며 "라누치와 리포트의 작업은 과거의 어두운 면과 숨겨진 진실, 정치적 스캔들로 점철된 이탈리아에서는 매우 소중하다"고 말했다.
르몽드는 극우 성향의 멜로니 총리가 집권한 이래 이탈리아 언론의 상황은 현저히 악화했다고 지적했다.
멜로니 총리의 집권 여당인 이탈리아형제들(Fdl)이 탐사보도 기자들을 상대로 잇따라 소송을 제기해 언론 활동을 위축시켰고, 공영 방송을 장악해 정권의 이데올리기를 전파하려는 시도를 벌였다고 르몽드는 꼬집었다. 일부 기자는 이스라엘 기업의 한 소프트웨어를 통해 감시당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싱크탱크 미디어자유신속대응의 디미트리 베토니 연구원은 "1980년대로 회귀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며 "많은 정치인이 언론을 문제 삼으면서 특정 기자들을 표적화하는데, 기자 보호는 지켜야 할 가치이며 이는 집단적·제도적 차원의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국경없는기자회의 언론 자유 평가 순위도에서 이탈리아는 올해 49위를 기록했다. 유럽연합(EU) 국가 가운데 하위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