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추적 장비 끄고 원유 암거래 정황…"중국·카메룬 선박 동원"
러시아에 연계된 유조선들이 바다 위에서 경로 추적이 어려운 이른바 '암흑 활동'을 대폭 늘리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최근 러시아산 원유에 대한 가격 상한제가 도입되는 등 갈수록 수위가 높아지는 서방의 제재를 회피해 암거래를 시도하려는 움직임으로 분석된다.
이스라엘의 해운 데이터 업체인 윈드워드에 따르면 지난 9∼11월 3개월간 남대서양 공해상에서 러시아 관련 선박의 '암흑 활동'이나 선박 대 선박 작업이 120건가량 감지됐다. 9월에는 35건, 10월은 50건, 11월은 40건 정도로 파악됐다.
이는 앞선 6∼8월과 비교해 약 2배로 늘어난 수치다.
'암흑 활동'이란 바다 위 충돌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일정 규모 이상의 선박에 의무적으로 설치되는 선박자동식별시스템(AIS)을 꺼둔 채로 운항, 항로 추적을 따돌리는 행위를 가리킨다.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사이에 놓인 남대서양에서 의문의 활동이 늘어나는 사이 미국과 서유럽 등 서방을 잇는 북대서양에서는 이런 선박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러시아가 이렇게 위치추적 시스템을 무력화한 채 불법 항해할 경우 눈에 띄지 않고 몰래 원유를 수출할 수 있다고 가디언은 지적했다.
실제로 최근 해운업계에서는 중국 등 제3국이 소유한 유조선을 통해 러시아산 석유가 운반되는 정황이 종종 포착되고 있다.
윈드워드가 파악한 사례를 보면 지난 6월 카메룬 국적의 한 유조선이 인도양의 작은 섬나라 세이셸로 등록지를 바꾼 후 대서양 중북부로 이동했다가 나미비아 인근 남대서양 해역으로 향하는 과정에서 거짓 위치신호를 발신했다.
이후 이 배는 지난 10월께 앙골라 근처 해역으로 이동해 6일 동안 같은 지점에서 위치신호를 보내는 상당히 이례적인 활동을 보인 후 최종 목적지인 말레이시아 항구에 도착했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산 원유를 받아 날랐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윈드워드의 분석이다.
아미 다니엘 윈드워드 최고경영자(CEO)는 "러시아 선단 및 관련된 단체들이 지난 6개월간 이란과 북한으로부터 제재 회피 방법을 익혀왔다"고 설명했다.
최근 국제사회에서는 유가상한제 발효를 계기로 주류 정유사·보험업계와 거래하지 않고 러시아, 이란, 베네수엘라 등 제재 대상국과만 거래하는 이른바 '그림자 선단'이 구성돼 러시아산 원유를 운송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제기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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