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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조의 왕" 필립공, 엘리자베스 2세 여왕 곁 70여년 마무리

연합뉴스 입력 04.09.2021 11:03 AM 조회 1,481
'여왕의 남편'으로 99세까지 해로하며 보좌…한국 국빈 방문도
몰락한 왕손으로 불우한 어린시절 보내…해군 경력에 다재다능 스포츠맨
영국 여왕 부부
9일(현지시간) 별세한 필립공(에딘버러 공작)은 70여년간 여왕의 남편으로서 곁을 지키며 외조를 해 왔다.


그는 전례 없는 역할을 맡아 거의 평생을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가며 일생을 살아왔다.

현재 최장수 군주인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필립공이 100세 가까이 되도록 해로한 모습은 여왕의 인기 비결이기도 하다. 

◇ 몰락한 왕손과 왕위 서열 1위 공주의 만남

여왕과 필립공은 1947년 11월 20일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서 화려한 결혼식을 치렀다.

그러나 처음엔 환영받지 못한 결혼이었다. 필립공이 그리스와 덴마크의 왕자 신분이었지만 모국에서 쫓겨나 친척들의 도움을 받고 지내는 처지였고, 누나들이 독일인들과 결혼한 점이 2차 대전 후 영국인들의 심기를 불편케 했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부부 약혼식[영국 왕실 홈페이지 갈무리. 재판매 및 DB 금지]


여왕과 필립공의 사랑은 1939년 7월 다트머스 왕립해군학교에서 시작됐다. 아버지 조지 6세를 따라온 13세 공주는 잘생기고 활기찬 18세 필립공에게 반한 것으로 알려졌다.

졸업 후 필립공이 영국 해군에 입대했지만 이들은 편지를 주고 받으며 애정을 키웠고 결국 8년 만에 결혼에까지 이르렀다.

필립공은 이때만 해도 왕의 사위일 뿐이었지만 조지 6세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1952년 2월 6일 엘리자베스 2세가 여왕에 즉위하면서 신분이 바뀌었다.

그는 여왕과의 슬하에 찰스 왕세자, 앤드루 왕자, 에드워드 왕자, 앤 공주 등 자녀 4명, 윌리엄 왕세손 등 손주 8명에 여러 증손주를 뒀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 가족
◇ 불우한 유년기 보내고 군주의 충직한 배필로

필립공은 1921년 6월 10일 그리스 코르푸섬에서 그리스 앤드류 왕자의 늦둥이 외아들로 태어났다. 그리스와 덴마크 양국에서 모두 왕위 승계대상이었다.

그러나 이듬해 큰 아버지가 군부에 그리스 왕좌를 빼앗기고 필립공의 가족도 영국 해군의 도움으로 겨우 탈출하는 일이 벌어진다.

필립공은 처음엔 프랑스 파리에서 미국 학교를 다니다가 영국으로 옮겨서 외가 친척들과 함께 지냈다. 이때 어머니는 정신병원에 입원해서 거의 만나지 못했고 아버지는 모나코로 가버리고 누나들은 모두 결혼을 해서 떠나는 등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다.

그는 다시 독일에서 학교를 다니다가 또 스코틀랜드의 기숙학교로 가는 등 불안정한 생활을 계속했다.

그 와중에 독일에 있던 누나와 조카가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고 2차 대전 때는 영국 해군으로 참전해서 독일인 매형들과 반대편에 서기도 했다.

전쟁이 끝난 뒤엔 영국으로 돌아와 1946년 조지 6세에게 결혼 승낙을 요청했고 이듬해 7월 드디어 엘리자베스 2세와 약혼을 했다.

그는 결혼을 위해 그리스와 덴마크 왕위계승권을 포기했고 영국인으로 귀화했으며 성을 영국식으로 '마운트배튼'으로 바꾸고 성공회로 개종했다.

이때부터 그는 한 곳, 여왕의 남편 자리에 머물렀다.

찰스 왕세자가 다이애나비와 결별하는 등 자녀들이 이혼하거나 구설에 휘말리고, 손자인 해리 왕자는 왕실을 뛰쳐나가는 등 바람 멎는 날이 없었지만 여왕 부부는 큰 분란 없이 지내왔다.
 

영국 여왕 부부 결혼 70주년
◇ 튀지 않으며 눈에 띄게…종종 말실수도

필립공은 여왕의 남편이자 보좌하는 역할을 새로 써왔다. 눈에는 띄지만 너무 튀지 않도록 균형을 맞춰가며 여왕을 지켜왔다.

필립공은 1997년 결혼 50주년 금혼식에서 "내가 할 일은 첫째도, 둘째도, 그리고 마지막도 결코 여왕을 실망시키지 않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2017년 은퇴하기까지 근면성실하게 여왕의 공식 행사를 따라 다니고 수백개 자선단체를 지원했다.

1999년 여왕 국빈 방한 때도 동행해서 인천공항과 월드컵 경기장 공사 현장과 비무장지대(DMZ) 등을 방문했다.

다이애나비 사망 때 어린 손자들을 언론의 관심에서 보호하고 장례식 행렬에서 손자들과 함께 걸어준 것도 필립공의 몫이었다.

특히 자신의 작위를 딴 '에딘버러 공작상'이라는 청소년 프로그램을 만들어 세계 100여개 나라에서 운영 중이고 환경운동에도 적극 나섰다.

다재다능한 스포츠맨으로 폴로 등 말을 타며 하는 운동을 즐겼고 항공기 조종 경력도 상당하다. 97세에 운전을 하다가 전복사고가 나기도 했다.

종종 부적절한 농담을 하거나 정치적으로 문제 소지가 있는 발언을 하는 등 실수를 했지만 여왕의 용서를 받았다.
 

2007년 미국 방문한 여왕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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