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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대, 주름 펴는 보톡스로 맞춤형 치료 "프로테아제" 개발

연합뉴스 입력 02.25.2021 10:26 AM 조회 857
보톡스 유전자 프로그램 편집→지정 표적 분해 프로테아제로 진화
신경 재생, 성장 조절 등 효과 기대…저널 '사이언스' 논문
신종 코로나의 프로테아제 구조
고분자 결정학 기술로 밝혀낸 프로테아제 구조를 그래픽으로 만든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프로테아제는, 2개의 동일한 분자로 구성된 2분자체 형태를 띠는데 하나는 녹색과 자주색, 다른 하나는 회색으로 보인다.
활성 상태인 프로테아제 중심과 결합한 저분자(노란색)가 바이러스 억제제의 청사진이 될 수 있다.
[독일 뤼벡대 힐겐펠트 교수팀 '사이언스' 논문 캡처 / 재판매 및 DB 금지]
흔히 보톡스(Botox)로 통하는 '보툴리눔 독소'(BTX)는 클로스트리듐 보툴리눔(Clostridium botulinum) 균이 분비하는 독성 단백질이다.

단 1g으로 수만 명을 사망하게 할 만큼 독성이 강해 한때 화학무기로 개발되기도 했다.

하지만 의료계에선 극미량만 써도 근육의 국소 마비를 일으키는 보톡스를 '기적의 독소'로 평가하기도 한다.

실제로 보톡스는 만성 편두통, 억제할 수 없는 눈 깜박임, 근육 경련 등의 치료제로 미국 FDA(식품의약국) 승인을 받았고, 주름 개선 등 미용 목적으로도 널리 쓰인다.

미국 하버드대 과학자들이 보톡스의 유전자 프로그램을 조작해 신경 재생, 성장 호르몬 조절, 염증 완화 등에 효과가 있는 치료용 프로테아제로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특정 단백질만 식별해 표적으로 삼는 이 맞춤형 프로테아제는,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치명적 면역 반응으로 알려진 '사이토카인 폭풍'(cytokine storm)을 가라앉히는 데도 효과가 있을 거로 기대된다.

프로테아제(protease)는 단백질과 펩타이드 결합을 가수분해하는 효소를 말한다. 단백질은 프로테아제의 분해 과정을 거쳐 활성화하기도 하고 비활성화하기도 한다.

이 연구 결과는 지난 19일(현지 시각) 발간된 저널 '사이언스'(Science) 371호에 논문으로 실렸다.

이번 연구는 공동 교신저자를 맡은 하버드대의 데이비드 리우(David Liu) 화학 생물학 석좌교수와 둥 민(Min Dong) 의대 부교수가 주도했다. 

 

보톡스의 인체 내 작용유전공학으로 조작한 보톡스가 뇌 신경 손상, 급성 염증, 근육 부상 등의 새로운 치료제가 될 수 있다고 미국 하버드대 연구진이 학계에 보고했다.
[하버드대 The Liu lab 제공 / 재판매 및 DB 금지]


25일 미국 과학진흥협회(AAAS) 사이트(www.eurekalert.org)에공개된 논문 개요 등에 따르면 하버드대 연구팀은 '사상 최초'라 할 만한 두 가지 성과를 냈다.

하나는 프로테아제의 유전자 프로그램을 재편집해 애초의 표적 단백질 대신 완전히 다른 단백질에 작용하게 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생물학의 '고전적 도전'(classical challenge)으로 일컬어지는, 하나의 세포에서 다른 세포로 건너가는 치료법을 디자인한 것이다.

다른 고분자 단백질과 달리 보톡스 프로테아제는 뉴런(신경세포)에도 대량으로 진입할 수 있다. 당연히 이런 특질은 접촉 범위를 확대해 치료 약물로 개발될 가능성을 높인다.

연구팀이 개발한 프로테아제는, 분해할 특정 단백질을 지목해 지시를 부여함으로써 하나의 맞춤형으로 진화시킨 것이다.

진화한 프로테아제의 이런 능력은 '단백질체(Proteome·단백질 유전 정보) 편집'을 가능하게 하는데 이는 현재의 유전체(genome) 편집 기술을 보완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연구팀은 설명한다.

사실 과학자들은 지난 수십 년간 질병 치료에 프로테아제를 이용하는 방법을 연구해 왔다.

체내에서 특정 이물질만 공격하는 항체와 달리 프로테아제는 다수의 단백질을 식별해 결합할 수 있고, 일단 결합하기만 하면 단순히 표적을 파괴하는 것 이상의 일을 한다.

예컨대 프로테아제는 비활성 상태의 단백질을 다시 활성화하기도 한다.

겸상 적혈구 빈혈(sickle cell anemia)과 같은 난치성 유전병도 유전자 편집 기술로 유전자 오류를 제거하면 증상이 사라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유전과 상관이 없는 뇌졸중 후 급성 신경 손상 같은 증상엔 프로테아제 기반의 치료가 필요하다. 

 

논문의 공동 교신저자인 데이비드 리우 교수[하버드대 제공 / 재판매 및 DB 금지]


리우 교수 랩(실험실)이 자체 개발한 PACE(phage-assisted continuous evolution) 플랫폼 기술이 이번 연구의 돌파구를 열었다.

PACE는 하루에 수십 세대의 단백질 진화를 가능하게 하는 기술이다.

연구팀은 이 기술로 프로테아제의 타고난 표적 단백질 범위를 대폭 좁힌 다음 최종적으로 새롭게 지시한 단백질만 식별하게 가르칠 수 있었다.

그 결과는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연구팀은 3개 보톡스 족(族)에서 4개의 프로테아제를 골라 PACE 기술로 진화시켰다.

그런데 4개 모두 원래 단백질 표적은 거들떠보지 않은 채 새로 지정된 표적만 분해했다.

특히 이렇게 진화한 프로테아제는 이전보다 최저 218배에서 최고 1천100만 배 이상의 효소 특이성(enzyme specificity)을 보였다. 이는 효소가 특정 기질에 대해서만 촉매 작용을 하려는 성질을 말한다.

이런 프로테아제는 또한 의학적 가치가 매우 높은 세포 진입 능력을 그대로 유지했다.

이론적으로 매우 강력한 '세포 내 치료'(intracellular therapy)의 무기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보톡스는 인간의 세포 내에서 최장 3개월까지 존속한다. 이는 생명주기가 수 시간에서 수일에 불과한 보통 단백질보다 비교할 수 없이 긴 것이다.

하지만 표적 단백질만 분해하게 진화한 보톡스 프로테아제도 시간이 지나면 면역계의 감시망에 걸려 파괴될 수 있다.

그래서 연구팀은 다른 포유류 동물의 프로테아제를 같은 방법으로 진화시키기 위해 선별 작업을 하고 있다.

인간의 면역계가 자기와 닮은 단백질을 공격할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이다.

논문의 제1 저자인 리우 교수 랩의 트래비스 블룸 박사후연구원은 "이 시스템의 한계가 어디인지 확인하고 있다"라면서 "이론적으론 관심을 끄는 어떤 단백질이라도 (보톡스) 프로테아제로 분해하는 걸 생각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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