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를 만나다] 세계 최대 카지노·호텔 경영자 개리 러브맨 시저스 엔터테인먼트 회장 <2>
<1편에서 계속>
카지노 하면 도박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배포와 대담함, 무모함이 모두 담겨있다. 그러나 러브맨 회장에게 받은 인상은 치밀한 계산과 신중함이었다. 그는 그동안 카지노 호텔 그룹이 중점적으로 관리해오던 ‘하이 롤러(high roller, 고액 베팅 고객) 대신 푼돈을 즐기는 일반 고객을 겨냥해 각종 프로모션과 그룹 역량을 집중시킨 것도 얼핏 보기에 ‘위험한 도박’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정교한 분석이 뒷받침 된 것이다. 그는 실험을 통해 현장에 반영시켰다. 해라스(시저스) 그룹에서 실험한 내용은 하버드대 MBA 케이스 스터디에도 소개됐다. 실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무료 숙박에 두 번의 스테이크 저녁 식사, 30달러어치 카지노 칩 제공 등이 포함된 125달러짜리 패키지 상품과 단지 60달러어치 카지노 칩 제공 상품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많은 매출을 올릴 수 있을까, 라는 실험이다.
손님을 두 개 그룹으로 나누어 실험해 보니 60달러어치 카지노 칩 제공 상품이 훨씬 더 많은 매출을 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러브맨은 카지노 방문객들이 머무는 시간을 2일에서 3일로 늘린다든가 고객당 평균 베팅 금액을 5달러에서 25달러로 높이기 위해 할인 프로모션과 쿠폰 제공 등 여러 이벤트를 시도했다.
러브맨은 모든 실험의 전후에 엄청난 양의 데이터에 대한 분석과 함께 평가를 지속적으로 수행했고 현장에 그대로 적용시켰다. 대부분의 경우 매니저들은 그동안 정보가 별로 없이 업무를 수행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를 테면 직원회의에서는 정교한 분석 없이 감에 의한 결정이 내려졌다. 정보는 많을수록, 분석을 많이 할수록 좋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이런 정보없이 값싼 컴퓨터 시스템을 들여놓으면, 결국엔 실적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정보를 생산하고 가공하는 데 엄청난 돈이 투자된다는 것이었다.
시저스는 2000년대 중반부터 두터운 서민층을 주요 고객으로 확보하기 시작했고 잇단 인수합병을 거치면서 덩치를 키울 수 있었다.
“MGM을 물리치고 1등 기업으로 올라섰는데요. 이 과정에서 어떤 리더십을 발휘했나요?”
차창 밖으로 바람소리가 조금 들렸다. 그는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생각하는 리더십은 이렇습니다. 명확한 방향(clear direction)을 제시하고 가장 재능 있는 사람(most talented people)을 채용하고, 그들이 사업 전략을 효과적으로 따를 수 있는 모든 자원(resources)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또 모든 직원이 추구하고, 고칠 수 있는 최상의 기준을 창조하는 것입니다.”
러브맨의 리더십은 이끌기보다는 제시하는 스타일이었다. ‘넛지’처럼 옆구리만 살짝 찔러주면 스스로 알아서 행동할 수 있도록 만드는 식이었다. 그는 고위 경영진들이 잘못된 결정을 내릴까 두려움에 사로잡혀 옴짝달싹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합리적 의사 결정을 가능하게 하는 방안으로 ‘심리적 안전지대(psychological safety zone)’를 제시했다.
불가능하다는 생각에 압도돼 있는 직원들에게는 아주 작게 쪼개 해결할 수 있는 실천 방안을 만들어 주는 ‘작은 승리 전략(small wins strategy)’을 제안했다. 적절한 타이밍의 미소, 칭찬 및 신뢰의 표현, 자신의 실수에 대한 인정, 두려움이나 냉소 및 적대감을 부추기는 고객들에 대해 부드럽지만 단호한 대응 등 수백 가지의 작은 말과 행동들을 통해 분위기를 안정시키고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만들었다.
CEO로서 그는 하루에도 몇 번씩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어떤 선택은 전체 그룹의 향방을 바꾸는 의사 결정을 해야 할 때도 있다. 중대한 결정은 어떻게 해서 결론을 내릴까, 그의 방법이 궁금했다.
“전 항상 몇 가지 반복적인 단계를 거칩니다. 일단 얻을 수 있는 모든 정보는 모두 모읍니다. 그런 다음 의사 결정을 해서 일어날 일에 대한 추론(assumption)을 세운 뒤 스스로 질문을 합니다. 그 다음 이 문제에 대해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은 뒤 내가 할 수 있는 최상의 결정을 내립니다.”
워라벨(일과 인생의 밸런스)에 대한 호텔, 휴양 산업인 하스피탈리티(hospitality) 시장도 확대되고 있다. 미국은 이 분야의 선진국이고 라스베이거스는 그 가운데서 선봉에 있다. 그는 하스피탈리티 산업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하고 있을까.
“이 산업은 지속적인 혁신이 이뤄지고 있는 분야입니다. 디지털 기술이 접목되면서 고객에 따라 개별 서비스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전 서비스 영역에 걸쳐 업그레이드가 이뤄질 것으로 봅니다.”
실제로 라스베이거스는 디지털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이제 슬롯머신에서 딴 돈이 더 이상 소리를 내며 나오지 않는다. 대신 얇은 종이에 찍혀 나온다. 돈이 나오는 시간 동안 고객이 게임을 할 수 없고 계속 게임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또 개인의 도박 금액, 스타일, 좋아하는 게임 종류를 맞춤식으로 제공하는 방안도 일부 시행 중이다.
“카지노 호텔 기업의 CEO로서 다음 과제는 무엇입니까.”
“전세계에 불어닥친 금융위기 속에서도 기업을 지속적으로 이끌어 나가는 것이고, 아시아 시장에서 브랜드를 확장시키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한국을 아시아의 교두보로 생각해요. 중국 관광객이 많이 몰려들 수 있고, 일본에서도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다는 지정학적인 입지 조건이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최근엔 한국을 자주 다녀옵니다. 세 번째 방문에서 느낀 점은 한국의 경제가 활기를 찾고 있었고, 해외에서 몰려들고 있는 관광객 등이 인상적이었어요. 한국 카지노 업계 관계자들을 폭넓게 만나면서 여러 의견을 들고 있어요. 아직 한국 법에는 해외 카지노의 진출에 대한 제약이 많기 때문에 여러 사항을 잘 검토하고 있는 단계 입니다.”
“하루 일과 중에 가장 중요한 활동을 꼽는다면 무엇인가요.”
“하나를 꼽기가 정말 어렵군요. 두 가지라고 말하고 싶군요. 하나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고, 직업적으로는 수석 부사장들과 회의를 통해 그들이 하는 일을 잘 이해시키고 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가치를 실천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동시에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분명히 아는 사람임을 드러내 보였다. 러브맨은 매일 치열한 숫자와의 전쟁을 벌이는 CEO이지만 보스턴 근교에서 라스베이거스로 비행기로 출퇴근하는 이유도 자녀의 교육 때문이라고 했다. 그만큼 가족의 가치를 중시하고 있었다. 아마 한국의 경영자들이 가장 취약한 점이 이 부분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는 가족을 위해 일한다는 한국 가장들이 일 때문에 가족을 희생시키고 있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언젠가 대통령 전기를 써온 전기 작가를 만나 미국을 관통하는 핵심 가치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그는 미국 대통령의 연설문을 관통하는 핵심가치는 3F라고 말했다. Family, Freedom, Faith(가족, 자유, 신앙). 아브라함 링컨, 케네디, 부시, 오바마에 이르기 까지 어떤 대통령의 연설에서도 빠지지 않고 있는 요소가 3F라고 했다. 대중이 대통령 연설에 열광하는 이유는 미국인 사고방식에 있는 가치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족은 그만큼 미국인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이다.
한가지 질문을 할 시간 밖에 남지 않았다. 나는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러브맨 회장이 살아오면서 얻은 최고의 조언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다.
그의 답변은 간단명료했다.
“당신과 협력할 수 있는 최고의 인재와 일하라는 조언이었습니다.”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한다. 당신 주변에 있는 뛰어난 인재는 당신의 두뇌와 마음을 자극시켜 더 큰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런 조언을 꾸준히 실천한 노력이 2등 기업을 1등 기업으로 만드는 비결이 아니었을까. 사업이든 인생이든 최고의 인재를 만나야 성공할 수 있는 기회도 그만큼 많이 얻을 수 있다.
깜박 잊은 게 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가능하면 도박은 피하는 게 좋다. 소액을 재미로 하는 것은 몰라도 돈을 따려고 생각한다면 아예 시작을 말라고 말하고 싶다. MIT와 하버드 등에서 수학 천재라고 불리던 엘리트 졸업생들이 만든 카지노 프로그램을 당신의 평범한 두뇌로 이길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혹시 운이 좋아 생각지도 않는 돈을 땄다면 얼른 자리에 일어나라. 늦게 일어날수록 그 돈이 당신 수중에 있다는 보장은 점점 희박해진다. ‘좀 더 딸거야’라는 갬블러의 욕심으로 인해 라스베이거스가 오늘도 휘황찬란하게 빛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오늘을 제대로, 열정적으로 산 사람만이 훗날 제대로 된 한 방을 보상받는다. 사람들은 오지 않을 한 방을 위해 황금보다 더 소중한 오늘을 의미없게 지나치고 만다. 자연의 법칙을 따르는 ‘인생의 슬롯머신’은 요행이 아닌 인내로 터지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