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녀, 칼의 기억'의 비극이병헌만 탓할 수 없는 이유

글쓴이: 케세라세라  |  등록일: 08.18.2015 17:05:06  |  조회수: 2499
탐미와 비장미는 지나치고, 인물과 이야기 개연성은 부족

[CBS노컷뉴스 유원정 기자]

영화 '협녀, 칼의 기억'에서 홍이 역을 맡은 배우 김고은. (공식홈페이지 캡처)
여기 교육받은 의협과 타고난 혈육의 정 사이에 한 소녀가 놓여 있다. 과연 소녀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것인가. 영화 '협녀, 칼의 기억'(이하 협녀)은 이 물음에 답하는 영화다.

고아 소녀 홍이(김고은 분)는 눈 먼 대모 월소(전도연 분) 밑에서 무공을 연마하며 자라난다. 무술 대회에 나간 홍이는 월소를 그리워하던 권력자 유백(이병헌 분)의 눈에 띄게 된다. 이 사실을 안 월소는 홍이에게 충격적인 진실을 전한다. 모든 것이 망가진 13년 전처럼, 유백을 사이에 둔 홍이와 월소의 파란만장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야기는 크게 두 줄기다. 유백과 월소의 로맨스. 그리고 홍이의 복수극. 결국 유백은 월소를 곁에 두고, 홍이는 복수에 성공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것은 비극이다.

문제는 감독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비장미가 그저 부담으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그 결과 영화 내내 3인의 검객 사이를 휘도는 비장미는 웅장하기만 한 느낌으로 관객을 짓누른다. 유백과 월소의 로맨스조차 여기에 잠식돼 제대로 느껴지지 않는다.

협녀를 보면 무심코 떠오르는 홍콩 무협 영화들도 비장미를 추구한다. 그런데 왜 유독 이 영화만 이런 문제가 생기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비장미를 향해 가는 이야기들이 촘촘하지 못하고, 설득력마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홍이의 복수도, 월소의 대의도, 유백의 마지막 선택도 모두 찝찝한 의문을 남긴다.


영화 '협녀, 칼의 기억' 속 홍이(김고은 분)와 유백(이병헌 분)의 결투 장면. (공식 홈페이지 캡처)
특히 홍이의 복수가 마무리 되는 순간은 보편적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지경에 이른다. '천륜'을 뛰어넘을 정도의 개연성이 있다 해도 납득이 힘들진대, 영화적인 효과로 치부될 수 없음은 당연하다.

영화는 복수의 끝을 향해 쉴 틈 없이 달려가지만 '왜?'라는 질문에는 답하지 못한다. 일말의 공감 없이는 결코 받아들여질 수 없는 그 어떤 것. 아이러니하게도 영화는 비장미가 절정에 이른 순간,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잃어버린다.

만약 배경인 고려 후기의 사회 구조적 문제와 복수가 연결됐다면 다른 결과를 낳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상황들은 어디까지나 배경으로만 이용될 뿐이고, 대의도 명분도 부족한 '사적 복수'에 초점이 맞춰진다.

이쯤에서 홍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나중에는 명분과 그 대상이 모호해지는 이 복수의 중심에는 홍이가 있다. 겉으로는 주체적이고 능동적이지만 실체없는 복수를 철저하게 순응하고 받아들이는 캐릭터 역시 홍이다.

염원하던 복수를 완성하면서 홍이는 주체인 동시에 희생자가 된다. 철저히 복수를 위해 자라난 홍이의 자아는 무너지고, 그는 순식간에 운명을 강요당한 피해자로 전락한다. 그야말로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 격이다. 한 사람의 욕심에서 시작된 비정상적인 학대는 어쩔 수 없는 '체념'과 거스를 수 없는 '운명'으로 미화된다.


영화 '협녀, 칼의 기억'에서 맹인 검객 월소 역을 맡은 배우 전도연. (공식 홈페이지 캡처)
와이어가 충분히 사용된 액션은 사실적이기보다는 환상적이다. 느리게 흩뿌려지는 검붉은 피와 흰색으로 가득찬 공간은 강렬한 대비를 이룬다. 지극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감독의 성향이 엿보인다.

유명 무협 혹은 액션 영화를 오마주한 듯한 장면들도 있다. 대나무숲에서 홍이와 스승(이경영 분)이 겨룰 때는 '와호장룡'이 생각나고, 홍이가 홀로 유백의 집에 가서 군사들을 상대할 때는 '킬빌'이 떠오른다.

이 액션들 역시 때때로 과한 지점이 있다. 홍이의 상상 속에서 월소와 겨루는 장면이 그렇다. '탐미'하기 위해 만들어진 도구적이고 수치적인 장면에 불과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사람들이 몰려드는 여름 성수기 극장가에서 유독 협녀가 외면받는 이유는 늦은 개봉도 아니고, 개봉 지연의 원인이었던 배우 이병헌의 스캔들 때문도 아니다. 영화에 비하면 오히려 배우들은 어디서나 자신의 기량을 펼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아름다움은 지나쳤고, 개연성은 부족했다. 그저 어느 것에서도 관객을 납득시키지 못한 작품에게 닥친 비극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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