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선자와 나의 연결고리, `파친코` 김민하

글쓴이: Persona_  |  등록일: 04.20.2022 09:44:43  |  조회수: 469
“감독님 두분 다 내게 이 장면에 존재하라고, 숨 쉬라고 계속 말씀해주셨다. 다른 세부적인 디렉션보다 숨 쉬라는 그 말이 제일 도움이 됐다.” 1915년부터 1989년까지 4대에 걸친 한 가족의 대서사를 그린 드라마 <파친코>, 그 중심엔 선자가 있다. 김민하가 연기한 젊은 선자는 천진한 소녀로서, 그리고 두 아이의 엄마로서 여러 차례 변화를 겪는다. 일제강점기, 파란의 시대에 속절없이 무너졌다가도 다시 일어나 주어진 시간을 묵묵히 살아내는 다부진 인물이다. <파친코> 공개 이후 배우 김민하의 이름 앞엔 ‘준비된 배우’라는 수식어가 붙기 시작했다. 유창한 영어, 독립영화와 드라마를 거치며 쌓아온 표현력, 쉽게 흔들리지 않는 의연함이 돋보였기 때문일 테다. 인터뷰로 만난 김민하는 의연함 아래 여전히 꿈의 세계를 선망하는 순수함을 간직한 사람이었다. ‘자신을 잃지 않는 것’을 올해 목표로 답한 그의 말이 비로소 이해가 됐다. 마주앉은 김민하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의 세상은 어디까지 뻗어나갈지, 그 무한한 가능성을 가늠해보았다.


- <파친코> 원작 소설을 반복해서 봤다던데 최근 새롭게 보이는 지점이 있었나.


= 읽을 때마다 다른 부분이 눈에 띄는 신기한 작품이다. 이번에는 선자가 부모에게 어떤 교육을 받고 어떻게 사랑받고 자랐는지가 가장 크게 들어왔다. ‘앞으로 선자가 홀로 살아갈 때 그 지점이 크게 영향을 줬겠구나.’ 처음 읽을 때도 느꼈던 거지만 다시 읽으니 더 깊게 다가오더라.

- <파친코> 오디션부터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 준비 과정이 어땠나.



= 3~4개월 동안 치러진 긴 오디션이었다. 세개의 신을 준비했고 몇 차례 인터뷰도 가졌다. 매일 명상을 하며 다짐했다. ‘최선을 다하되 지나친 욕심은 갖지 말자.’ 욕심을 갖고 보여주려 하면 더 어긋나는 것 같아 마음을 비우고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려 했다. 그 과정에서 스스로에 대해 알게 된 바가 많았다. 신도 열심히 분석하고 많은 연구를 거쳤지만 돌이켜보면 그게 가장 크게 얻은 것이었다.

- 오디션 때 들은 말 중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


= “사투리 정말 못하는데 잘하는 것처럼 들린다.” (웃음) 그리고 “너는 정말 강한 사람인 것 같아”. 나는 나를 잘 아니까 강하지 못한 때를 훨씬 더 많이 기억하지 않나. 그래서 스스로 강한 사람이라고 여기기 어려운데, 내게 그런 부분이 있구나 새삼 생각했다.

- <파친코>를 보면서 사투리가 능숙하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론 익히느라 고생을 좀 했다고.



= 정말 어려워서 사투리를 코치해 주시는 선생님께 열심히 배웠다. 또 부산, 영도에 살았던 친구들에게도 수없이 물어보고 대화할 때도 되도록 사투리로 하려고 했다. 특정 대사가 대단히 어려웠다기보다 감정 신에서 감정을 쏟아부어야 할 때, 사투리를 계속 신경 쓰면서 해야 해서 그런 점이 쉽지 않았다.

- 10대가 된 선자의 첫 등장이 인상적이었다. 일본 경찰들이 수산시장에 나타났을 때 오직 선자만이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보면서 참 단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연기한 배우로서 본 선자는 어떤 인물이었나.


= 정말 사랑이 많은 아이다. 그렇기 때문에 본인과 본인의 가족을 지킬 줄 알고, 또 그만큼 현명해서 어떤 상황에 직면했을 때 빠르게 해결책을 찾는다. 무너질 때는 솔직하게 무너질 줄 알고. 그 과정을 거치면서 넘어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강인한 인물이라는 걸 알게 됐다.

- 대본을 읽으면서 “이건 내가 정말 잘할 수 있고, 내가 꼭 해야 한다”라고 느꼈다고. 어떤 면에서 그런 자신감이 생겼나.



= 오디션을 준비하고 선자를 연구하면서 나와 교집합이 많다고 느꼈다. 남들이 볼 땐 목소리도 작고 연약해 보이지만 실제론 유연하면서도 강한 면모가 있다는 점. 큰일에 오히려 덤덤하고, 대범하고 선택이 빠르다는 점도 비슷했다.

- 당시 시대상을 공부할 때 친할머니가 조언을 해주셨다던데.


= 역사 공부도 하고 그 시기에 쓰인 소설, 음악 같은 걸 두루 참고했는데 할머니와 나눈 대화에서 가장 크게 영향을 받았다. 아무래도 그 시대를 산 증인의 말씀을 직접 듣는 거니까. 여러 이야기를 해주신 뒤에 “민하야, 난 네가 이 역할을 하게 돼서 너무 좋은데 너무 슬퍼”라고 말씀하시는데 그 마지막 한 문장이 모든 걸 정리해 주는 기분이 들었다. 그 이후로 꼬인 채로 남아있던 것들이 착착 풀어져나갔다.


- 배우들이 다 함께 춤을 추는 <파친코>의 오프닝 시퀀스를 재밌게 봤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김민하 배우만 혼자 맨발로 춤을 추더라.


= 내가 맨발로 추고 싶다고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신발을 신고 추는 게 너무 불편했다. (웃음) 록, 힙합 등등 정말 다양한 음악을 들으면서 2시간 내내 춤췄다. 이날치의 <범 내려온다>도 많이 들었다.

- 표정으로 감정과 메시지를 탁월하게 전달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특히 한수(이민호)가 유부남이라 결혼할 수 없다는 말을 할 때 수많은 감정이 선자의 얼굴을 스쳐간다.


= 화도 나고, 슬프고, 어이없기도 하고, 말한 대로 정말 매초 감정이 바뀌었다. 너무 충격이었고 무슨 상황인지 믿기지도 않고. 현수는 선자에게 새로운 세상이자 백과사전 같은 사람이고 무엇보다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인데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감정이 주체가 안되더라. 혼자 준비할 땐 눈물, 콧물이 쏟아졌는데 막상 촬영에 들어가니 눈물도 안 나왔다. 준비할 때와 전혀 다른 상황이라 신기했다.

- 촬영하면서 이민호 배우와는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



- 다양한 의견을 주고받았다. 내가 “진짜 너무 열 받는다”고 하면 그걸 듣던 이민호 선배가 “나도 정말 이해가 안 된다”고 맞장구를 쳐주셨다. “그렇지만 한수 나름의 생존 방식이었음을 고려하면 한편으로는 이해가 간다”고도 말씀하셨는데, 그렇게 나눈 대화가 촬영할 때 정말 도움이 많이 됐다.

- 이삭(노상현)이 선자에게 “그 사람 잊을 수 있겠냐”고 물었을 때 대답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러고 싶다”는 대답보다도 앞선 공백이 선자의 마음을 더 잘 대변해주는 듯했다.


= 그 어떤 애정 신보다도 한수를 향한 선자의 마음이 잘 드러나는 신이라 생각한다. 처음 몇 테이크 때는 대답하기까지 시간이 훨씬 더 오래 걸렸다. 준비할 땐 사실 그 정도로 입을 떼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 못 했는데 막상 현장에서 이삭의 말을 들으니 눈물이 너무 많이 나서 대답하기가 쉽지 않더라.


- 10대 소녀가 누군가를 사랑해 가정을 이루고 엄마가 되기까지, 극중 선자의 다양한 모습을 묘사한다. 한 작품 안에서 그렇게 다채로운 모습을 표현하기 쉽지 않은데 그렇기에 선자란 캐릭터가 남다르게 와닿았을 것 같다.



= 정말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다. 사실 엄마를 연기하기가 굉장히 어려웠다. 엄마가 된다는 게 어떤 걸까. 단순히 책임감이 생기는 문제가 아닐 텐데. 결론적으로 내가 선택한 건 아내, 엄마처럼 선자의 나이대별 변화보다 그냥 그 상황에 집중하자는 거였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태도도 말투도 바뀌었다. 선자가 출산하는 장면을 잘 표현하고 싶었다. 너무 오버스럽거나 쉽게 출산하는 것처럼 표현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잘못하면 상처를 받는 분들이 계실 것 같아 관련 다큐멘터리를 많이 참고했다. 정말 신기한 게, 계속 생각해서 그런지 출산 장면을 촬영할 때 진짜 아이를 낳는 것처럼 배가 너무 아프고, 예민해지고, 진짜 내 아이 같아서 누가 만지는 게 싫어지더라. 엄마가 된다는 건 어쩌면 이런 감정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일본에서 선자의 다부진 면이 잘 드러났던 것 같다.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된 뒤에도 그렇고, 경희와 함께 요셉(한준우)이 빌린 돈을 대신 갚으러 가는 장면도 그러했다. 오사카 신을 찍을 때 정은채 배우와의 합은 어땠는지도 궁금하다.



= 모든 배우들과의 합이 좋았지만 특히 여자 배우들과의 시너지가 정말 크게 났다. 정은채 배우와는 굳이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정말 가족처럼, 형님 동서 지간처럼 의지가 됐고 그래서 내가 준비해 간 것보다 현장에서 200배는 더 잘 표현할 수 있었다. 정인지 배우와도 마찬가지였다.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울 때가 많았는데 선자가 양진(정인지)에게 아기를 가졌다고 이야기하는 장면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정말 속상했고 그냥 양진(정인지)의 얼굴만 봐도 눈물이 났다. 양진이 선자에게 쌀밥을 지어주는 신을 찍을 때도 정인지 배우가 제 옷을 여며주면서 “널 어떻게 보내니” 하는데,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쳐다보지를 못하겠더라. 눈물, 콧물이 쏟아져서 밥도 잘 먹질 못했다. 촬영하면서 서로에게 받은 에너지가 너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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