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러시아인이지" 우크라 침공 후 영국서 증오범죄 급증

초등학생도 왕따 피해…경찰에 보고 안 된 사건 많아 '빙산의 일각'
지난해 3월 "당장 떠나라" 러 대사관 앞에서 반전시위 하는 영국인들(기사와 직접관련 없음)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영국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1년 동안 러시아인을 겨냥한 증오범죄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3일(현지시간) 영국 스카이뉴스가 45개 광역자치경찰과 영국철도경찰(BTP)에 정보공개를 요구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수십 건의 러시아인 혐오 범죄가 최근 1년간 일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증오범죄 관련 정보공개에 응한 경우는 전국 광역경찰의 3분의 1도 안 되는 14곳에 불과했다. 나머지 경찰은 비용을 이유로 정보 제공을 거부하거나 러시아인 증오범죄에 대한 별도 기록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14곳의 사례만 집계해도 러시아인 혐오 범죄가 수십건에 이르는데, 혐오 범죄임에도 제대로 분류되지 않은 것을 포함하면 실제 사례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라고 스카이뉴스는 전했다.

잉글랜드 지방의 한 큰 경찰서는 2021년에 비해 지난해 러시아인에 대한 증오범죄가 배 이상 증가했다. 한 자선 단체는 러시아계 초등학생들도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폭언과 함께 집단따돌림을 당했다고 전했다.

피해자가 사건을 보고하지 않고 그냥 넘어간 경우까지 고려하면 러시아인을 겨냥한 증오범죄 보고 건수는 '빙산의 일각'이라고 한 전문가가 경고했다.

사례별로 보면 더비셔의 한 건축 현장에서 한 노동자가 러시아계 주민에게 "난 너희 러시아인을 증오한다. 너희들은 사람을 죽인다"고 말한 뒤 공격했다.

허트퍼드셔에선 한 러시아계가 건널목에서 폭행을 당하고 넘어진 뒤 "모든 러시아인은 살인자"라는 말을 들었다.

런던의 한 로펌에는 이 회사와 러시아의 사업관계를 비난하고 우크라이나를 옹호하는 내용이 담긴 편지와 함께 의문의 흰색 물질이 배달됐다.

노스웨일스에 사는 한 러시아 출신 여성은 "너는 왜 아직도 여기 있어. 너희 집으로 썩 꺼져"라는 욕설을 들었다. 랭커셔에서도 문자 메시지를 통한 언어폭력 사례가 보고됐다.

지역별로 맨체스터 광역 경찰은 지난해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개시 이후 13건의 대(對)러시아인 증오범죄를 보고했다. 2021년 6건, 2020년 2건에 비해 크게 뛴 것이다.

더비셔 경찰도 반(反)러시아인 범죄가 2021년엔 전무했으나 이듬해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에는 4건으로 늘었다고 밝혔다.

러시아인 셰프 알렉세이 지민은 스카이뉴스에 자신이 런던에서 운영하는 레스토랑이 우크라이나 침공 초기 무더기 예약 취소와 위협 전화 등 직격탄을 맞았다고 전했다.

정작 그는 우크라이나 전쟁 반대론자로 나서 러시아 TV의 요리 프로그램 출연도 못 하게 됐다. 그의 레스토랑은 우크라이나 난민을 위해 적십자사에 3만 파운드(약 4천700만원)를 기부하기도 했다.

마크 월터스 서식스대 범죄학 교수는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 때 인종차별적 증오범죄가 폭증하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 중국인 등 아시아인 혐오범죄가 급증했다면서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에도 이같은 경향이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영국 내무부 대변인은 방송에 "증오범죄는 지역사회의 평판을 해칠 뿐 아니라 현대 영국의 가치를 반영하지도 않는다"면서 "증오범죄를 저지르는 겁쟁이들에게 경찰이 본때를 보여줄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출신 국가별 증오범죄 피해 사례

출처: 연합뉴스 인포그래픽
증오범죄 피해자 15% 한국계…'중국계로 오인'
증오 범죄 사례를 분석한 만주샤 컬카니 변호사는 "가해자들이 한국 등 극동아시아 출신 이민자들을 무조건 중국인으로 간주해 차별하는 경우가 많았고, 동남아와 태평양 출신 이민자는 중국계로 간주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