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스 주 엘패소에서 46명의 사상자를 낸 총격 사건의 용의자로 20대 백인 남성이 경찰에 체포되면서 그의 범행 동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경찰은 그가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성명서와 SNS 활동내용 등을 근거로 이번 총격이 '증오 범죄'와 연관됐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
어제(3일) 뉴욕타임스(NYT)와 CNN 방송 등에 따르면 경찰은 어제(3일) 오전 별다른 저항 없이 범행 현장에서 21살의 용의자인 패트릭 크루시어스를 체포했다.
백인 남성인 그는 어제(3일) 오전 10시쯤 텍사스 주 엘패소 동부의 쇼핑단지 내 월마트에 총소리를 막는 귀마개를 끼고 들어가 소총을 난사해 20명을 숨지게 하고 26명을 다치게 했다.
NYT가 이번 사건을 '학살'(Massacre)이라고 표현할 만큼 미 전역을 충격에 빠뜨린 끔찍한 범행이었다.
범행 동기를 놓고 경찰과 언론은 꼭 일주일 전인 지난달(7월) 29일 북가주 길로이 '마늘 축제'에서 총기를 난사해 3명을 살해한 산티노 윌리엄 리건(19)과 마찬가지로 백인우월주의의 영향을 받았을 수 있다고 추정했다.
엘패소 경찰서장 그레그 앨런은 용의자가 온라인상에 올린 것으로 보이는 인종차별주의적 내용의 성명서와 관련해 이번 총격 사건이 '증오 범죄'와 연관돼 있는지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사건 직전 극우 성향 커뮤니티사이트인 '에잇챈'(8chan)에 게재된 2천300개 단어로 이뤄진 글을 크루시어스가 작성했는지 정밀 조사 중이다.
NYT와 AP 통신에 따르면 '불편한 진실'이라는 제목의 이 선언문에는 '히스패닉의 텍사스 침공'에 대한 언급과 함께 인종에 따라 미국의 영토를 분리하자는 제안 등이 담겼다.
선언문은 "히스패닉이 내가 사랑하는 텍사스 주 정부와 지방정부를 장악할 것이며, 그들의 입맛에 맞는 방향으로 정책을 바꿀 것"이라며, 이민자에 대한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냈다.
선언문에는 "우리가 충분히 사람들을 제거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의 방식이 더 지속 가능해질 것"이라면서 "이번 공격은 히스패닉의 텍사스 침공에 대한 대응"이라며 범행 이유를 설명하는 듯한 내용도 있었다.
아울러 "미국이 내부에서부터 부패하고 있다"며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에 책임이 있다고 비판한 뒤 "텍사스 주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히스패닉 인구로 인해 이곳이 민주당의 텃밭이 될 것"이라며 '반(反) 민주당' 정서도 드러냈다.
백악관의 주인이 민주당으로 바뀔 수 있다고 우려하는 언급도 있었다.
지난 3월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이슬람사원 총격 테러를 지지하는 내용도 담겨 50명의 목숨을 앗아간 뉴질랜드 테러가 이번 사건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선언문은 "일반적으로 나는 크라이스트처치 총격범과 그의 선언문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뉴질랜드 총격범도 에잇챈에 반이민 선언문을 게시하고 링크를 걸어놓은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이슬람사원 공격 장면을 생중계했다.
NYT는 "크라이스트처치는 전 세계 극단주의자들을 모으는 외침(rallying cry)이 됐다"며, 지난 4월 캘리포니아 파웨이의 유대 회당에서 총격을 가한 범인도 에잇챈에 반유대주의 게시물을 올렸는데, 크라이스트처치 용의자의 언급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전했다.
크라이스트처치와 파웨이, 그리고 이번 엘패소 총격 사건까지, 같은 극우 성향 커뮤니티사이트에 유사한 내용의 선언문이 게재됨에 따라 백인 우월주의가 인터넷과 SNS를 통해 급격히 확산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범행 직후 폐쇄된 것으로 보이는 크루시어스의 트위터 역시 멕시코 국경 장벽 건설 추진 등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을 칭찬하는 게시물이 많았다.
크루시어스의 의도가 있었는지 분명하지 않지만 어쨌든 이번 총격 희생자 중에는 다수의 멕시코인도 포함됐다.
멕시코 정부는 자국인 3명이 사망하고, 6명이 부상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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