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바이러스의 인체 전염이 어려운 이유 알아냈다"

연합뉴스 | 입력 12/11/2019 09:2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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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 14시간 뒤 인간세포(좌)와 조류세포. 녹색은 바이러스 단백질, 청색은 세포핵.[MDC 젤바흐 랩 제공]


독일 막스 델브뤼크 연구소, 저널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논문

 

'버드 플루(bird flu)'로도 불리는 AI(avian influenza) 바이러스는 인체에 침투할 수 있다.

 

그러나 AI 바이러스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 전염하지 않는다. 한 사람한테 전염된 AI 바이러스가 다른 사람한테 퍼지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만약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이른바 '팬데믹(pandemic·전염병의 세계적 유행)' 사태로 번질 수도 있다. 1918~1919년 유럽 등을 강타한 스페인 독감(Spanish flu)은 5천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래서 WHO(세계보건기구)는 AI 감염자가 발생할 때마다 촉각을 세운다. 그것이 대유행의 초기 조짐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보건 당국의 이런 초기 판단에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는, AI 바이러스의 숨겨진 약점을 독일 '막스 델브뤼크 분자 의학 연구소(MDC)'와 로베르트 코흐 연구소의 과학자들이 발견했다.

 

가장 흔한 A형 AI 바이러스가 인간의 세포에 침투해도 증식에 꼭 필요한 'M1 바탕 단백질(matrix protein M1)'을 충분히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게 요지다.

 

이번 연구를 주도한 MDC의 마티아스 젤바흐 교수팀은 관련 논문을 저널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Nature Communications)'에 발표했다. 그는 '단백질체 역학(Proteome Dynamics) 연구 그룹'의 리더(책임자)다.

 

10일(현지시간) 온라인(www.eurekalert.org)에 공개된 논문 개요( 링크 ) 등에 따르면 AI 바이러스는 몸체를 구성하는 단백질 2종의 조합에 따라 H5N1, H7N9, H5N6 식으로 이름이 붙는다. 여기서 'H'는 헤마글루티닌(hemagglutinin), 'N'은 뉴라미니데이스(neuraminidase)의 머리글자다.

 

그런데 헤마글루티닌에는 16종, 뉴라미니데이스엔 9종의 변이단백질이 있다. 이론상 가능한 두 단백질의 H-N 조합은 최대 144개라는 뜻이다. 변이단백질은 아미노산 서열만 약간 서로 다른 단백질을 말한다.

 

바이러스가 인간 등의 세포에 침투할 때 헤마글루티닌은 '닻(anchor)' 같은 역할을 한다. 해마다 바이러스 유형이 계속 달라지는 건, 이런 헤마글루티닌의 3차원 구조에 빠르게 변하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2009년 국내에서 유행한 H1N1 바이러스는, 91년 전 지구촌을 휩쓴 스페인 독감의 원인 바이러스와 같은 유형이었다.

 

젤바흐 교수는 "인간 바이러스와 AI 바이러스의 헤마글루티닌은 서로 약간 다른 화학적 구조를 가졌다"라면서 "그래서 AI 바이러스는 인간의 세포에 침투하기가 더 어렵다"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인간의 호흡기 상피세포를, 각각 AI 바이러스와 인간 독감 바이러스에 감염시킨 뒤 새로 생성된 단백질의 양을 '양적 질량 분광기(quantitative mass spectrometry)'로 측정했다.

 

예상과 달리 초반의 분석에선 새로 생긴 단백질의 양에 거의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분석의 심도를 높인 후속 실험에서 의문이 풀렸다.

 

연구팀은 인간 바이러스에 감염된 폐 세포에 생긴 단백질의 많은 부분이, 'M1 바탕 단백질(matrix protein M1)'이라는 걸 발견했다.

 

M1 단백질은, 감염된 인간 세포의 핵에서 복제된 AI 바이러스의 RNA를, 새로 생성된 바이러스 단백질과 합쳐 새 바이러스 개체를 만드는 데 관여했다.

 

인간 세포의 핵에서 복제된 AI 바이러스의 RNA가, 세포핵을 빠져나가지 못하는 것도, MI 단백질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추론이 가능했다.

 

알고 보니, AI 바이러스의 유전 물질은, 인간 독감 바이러스의 RNA보다 세포핵을 탈출하는 능력이 훨씬 떨어졌다.

 

결정적으로 연구팀은 AI 바이러스의 RNA에서, 스플라이싱(splicing)을 교란하는 작은 조각을 발견했다.

 

'cis-조절 원소(cis-regulatory element)'로 명명된 이 RNA 조각은 AI 바이러스의 RNA 전사를 방해했다. 스플라이싱은, 아미노산 정보가 없는 인트론을 잘라내고, 정보가 있는 엑손만 연결해 붙이는 'RNA 자르기'를 말한다.

 

인간의 세포가 AI 바이러스의 공격을 받았을 때 MI보다 M2 단백질이 더 많이 생성되게 하는 것도 이 원소의 작용인 것으로 확인됐다.

 

AI 바이러스의 cis-조절 원소를 인간의 폐에 전염된 인간 독감 바이러스에 옮겼더니, 바이러스의 복제 효율성이 떨어졌다. 이 원소가 인간 바이러스의 복제에도 작용한다는 의미다.

 

연구팀은 또한 격리 보관 중이던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의 RNA에도 같은 실험을 진행해 동일한 결과를 얻었다. 하지만 혹시 모를 유출 위험에 대비해 RNA는 전체가 아닌 일부분만 사용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