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편견과 맞서 싸운 다저스의 영웅, 재키 로빈슨 데이!

라디오코리아 | 입력 04/15/2019 01:17:15 | 수정 04/15/2019 01: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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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재키 로빈슨 데이)

재키 로빈슨의 부인 레이철 로빈슨(좌)과 딸 샤론 로빈슨(우)

 

15일(현지시간) 다저스 구장에서

탄생 100주년, 메이저리그 데뷔 72주년 기념,

로빈슨 가족 시구자로 참여,

다채로운 기념행사 개최

 

 

재키 로빈슨의 가족이 '재키 로빈슨 데이'인 4월 15일(현지시간) 미국 LA다저스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다저스와 신시내티 레즈와의 경기에 시구자로 참석한다.

 

이날 다저스 구단은 로빈슨 탄생 100주년과 그의 메이저리그 데뷔 72주년을 기념하여 재키 로빈슨의 부인 레이철 로빈슨과 딸 샤론 로빈슨 그리고 아들 데이비드 로빈슨을 시구자로 참여시키고 싱어송라이터 알로에 블라크(Aloe Blacc)와 그래미상을 14번 수상한 바 있는 허비 행콕(Herbie Hancock)을 초청하여 기념식을 치른다고 밝혔다.

 

잭 루스벨트 "재키" 로빈슨(영어: Jack Roosevelt "Jackie" Robinson, 1919년 1월 31일 ~ 1972년 10월 24일)은 1947년 4월 15일 브루클린 다저스(LA 다저스의 전신)에서 데뷔한 흑인 최초의 메이저리그 선수로, 1956년까지 다저스에서만 뛰다가 마지막 시즌 뉴욕 자이언츠로 트레이드되었다는 소식을 듣자, 그는 트레이드 거부를 선언하고 은퇴, 영원한 다저스맨으로 남은 선수다.

 

로빈슨이 데뷔한 1947년 미국은 팽배했던 인종차별주의 영향으로 상대편은 물론 관중들과 일부 같은 팀 선수들조차 그와 뛰기를 거부했다.

하지만 구단과 감독은 그 당시로써는 혁명적인 결단으로 메이저리그 선수로 등록하여 뛰게 하였고, 그는 미국 최고의 인기 스포츠인 야구를 통해 세상의 온갖 차별과 당당히 맞서 싸워 미국 내 인종차별을 없애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베이브 루스가 야구를 바꾸어 놓았다면 재키 로빈슨은 미국을 바꾸었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그는 선수로서도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평균타율은 0.311, 총 안타수는 1518개였으며 137개의 홈런포를 쏘아 올렸다. 데뷔 첫 해인 1947년 신인상, 1949년에는 내셔널 리그 MVP를 차지했으며, 6번의 올스타로 선정되었다. 1955년엔 다저스를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고, 1962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1997년 재키 로빈슨의 다저스 입단 50주년이 되던 해에 그의 등 번호 '42'를 최조로 메이저리그 전체 구단의 영구 결번으로 만들었고, 2004년에는 재키 로빈슨 데이를 지정했다.

 

로빈슨 기념일은 그의 자유, 평등, 인권의 정신을 기리는 의미로 메이저리그 모든 선수가 등번호 42번을 달고 경기에 출전하는 날이다.

 

재키 로빈슨의 등번호 '42번'이 던지고, '42번'이 받고, '42번'이 치면, '42번'이 잡는 날! 모든 구장에 단 하나의 등번호만 존재하는 날로 2004년부터 이어져오고 있다.

 


남원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