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격, 결단, 통합 지도력 남긴 ‘아버지 부시’

라디오코리아 | 입력 12/03/2018 04:18:11 | 수정 12/03/2018 04: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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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저 예일대에서 2차대전 참전해 구사일생한 품격있는 엘리트

냉전종식, 걸프전승리 결단력, 정적과 손잡고 국가에 봉사한 통합지도력

 

타계한 미국의 41대 대통령,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 대통령은 품격과 결단력을 지닌 통합의 지도력이란 고귀한 유산을 남긴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워싱턴에서는 오늘 저녁 부터 연방의사당에서 부시 전 대통령의 유해를 안치해 놓고 애도물결을 이루게 되며 5일 국가 애도의 날에 국장으로 워싱턴 내셔널 성당에서 장례식이 엄수된다

 

미국의 41대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 대통령. 94세를 일기로 타계해 미국은 물론 전세계에서 애도물결이 일고 있다.

 

아버지 부시 대통령 유해는 3일 저녁부터 5일 아침까지 연방의사당에 안치돼 조문을 받은후 국가애도 의 날로 선포된 5일 낮 워싱턴 내셔널 성당에서 국장으로 장례식을 거행하게 된다.

 

조지 H.W. 부시는 미국의 41대 대통령이자 43대 대통령인 조지 W(워커) 부시의 아버지로 미 역사상 두번째 부자 대통령 기록을 세웠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 예일대에 들어간 엘리트 코스를 걷고 있었음에도 세계 2차 대전이 발발하자 전쟁

에 뛰어들어 18세 생일에 해군조종사로 참전했으며 격추당했다 구사일생한 품격있는 엘리트로 꼽힌다

 

전쟁에서 돌아온 부시는 예일대 학업을 마치고 73년간이나 해로하다가 지난 4월 먼저 보낸 바바라와 결혼했고 중년엔 가문의 터전 동부를 떠나 텍사스로 이주해 오늘날의 텍사스 텃밭과 부시가문을 일궜다

 

연방하원의원으로 4년간 재임했으나 연방상원의원에 도전했다가 두번이나 실패한 위기때마다 유엔과 중국 주재 대사, CIA 중앙정보국장으로 발탁되는 관운도 누렸다

 

1980년 대권에 도전했으나 로널드 레이건에게 패배해 정치낭인이 되려는 순간 레이건으로 부터 러닝 메이트로 깜짝 지명받고 8년이나 미국의 부통령을 역임했다.

 

1988년 대선에서 마침내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받고 미국의 41대 대통령에 올랐다

 

그러나 부시는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내입술을 보세요, 새로운 세금 인상은 없습니다”(Read my lips, No new tax)라는 말 한마디가 후일 세금인상으로 당내 보수파들의 반발을 샀을 뿐 아니라 재선실패의 빌미 가 되기도 했다

 

대통령이 된후에는 냉전종식과 1차 걸프전 승리 등 외치로 90%의 지지율을 누리다가 미국의 불경기로 30%대 중반으로 급락해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Stupid, it’s economy)라고 외친 빌 클린턴 후보에게 패해 결국 단임으로 끝난 정치이력도 남겼다.

 

그럼에도 정적일 수 있는 빌 클린턴과는 격려 노트를 시작으로 돈독한 우정을 쌓은후에 25만명이나 숨진 인도네시아 쓰나미, 1800명이상 숨진 허리케인 카트리나 등 천재지변에 맞서 재난구호에 앞장서 사랑과 화합,통합의 리더쉽을 유산으로 남긴 것으로 추앙받고 있다.

  


한면택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