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 대한인국민회는 망명 정부와 다름없었다"

연합뉴스 | 입력 11/09/2018 09:29:08 | 수정 11/09/2018 09:2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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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의 도산 안창호 선생

[연합뉴스 사진자료]

 


아리랑라디오, 안창호 막내아들 랄프 안 인터뷰
  

아리랑라디오 '굿 모닝 서울'은 9일 도산 안창호 선생의 탄신 140주년을 맞아 그의 막내아들인 랄프 안(한국명 안필영)과 인터뷰했다고 소개했다.

 

지난 8월 14일 미국 캘리포니아 주 의회 하원에서는 11월 9일을 '도산 안창호의 날'로 제정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캘리포니아에 살며 결의안이 채택되기까지 과정을 직접 지켜본 랄프 안은 가족으로서 남다른 감회를 전했다.

 

그는 "아버지의 독립운동 정신이 이곳 캘리포니아에서도 이어질 수 있게 돼 굉장히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부모님이 한국을 떠나올 당시 많은 애국자와 함께 미국으로 오셨다. 한국의 독립을 언제나 최우선으로 둘 것을 같이 맹세했고, 우리 가족 모두 그 맹세의 중요성을 잘 알았다"고 설명했다.

 

랄프 안은 "어머니와 첫째 형 필립 안은 아버지의 독립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며 "신념을 제일 중요시했던 아버지는 비록 자신이 가족을 돌볼 순 없지만 나라를 위해서 떠나야 하니 언제나 가족을 마음에 새기겠다고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이번에 캘리포니아 주 의회가 안창호 선생의 기념일을 지정한 것은 당시 한인 사회를 이끌었던 안창호 선생과 그 가족의 업적을 인정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1910년 미국에서 결성된 대한인국민회의 전신이 안창호 선생이 결성한 대한인공립협회와 하와이의 한인합성협회였다.

 

랄프 안은 "대한인국민회는 캘리포니아에 본부를 뒀는데 그 당시 미국에 망명한 한국정부나 다름없었다"고 강조했다.


대한인국민회 입회증서 및 신분증 (1919년)

[촬영 이상학]

 

 

그는 "대한인국민회는 일본 외무성에 맞서 싸우며 국제적으로 독립운동을 알리는 데 주력했다. 일본보다 자원과 재원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고, 매우 힘든 싸움이었기 때문"이라며 "캘리포니아 한인들은 그 전통을 이어온 것을 굉장히 자랑스러워한다"고 말했다.

 

이 인터뷰는 홈페이지(www.arirang.com/Radio/Radio_Home.asp?PROG_CODE=RADR0160&MENU_CODE=102076)에서 들을 수 있다.


 

아리랑라디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