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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최초 달 왕복 우주선 지휘관 존 영, 87살로 별세

주형석 기자 입력 01.06.2018 03:25 PM 조회 3,246
미국의 전설적 우주인 존 영이 별세했다.

향년 87세다.

미 항공우주국, NASA는 42년간이나 우주비행사로 봉직했던 존 영이 어제(5일)밤 휴스턴의 자택에서 폐렴 합병증으로 숨을 거두었다고 밝혔다. 
존 영은 미 3대 우주개발계획에 참가했고 나중에는 최초의 우주왕복 비행의 사령관이었던 미국 우주개발계획사업의 상징과도 같았던 인물이었다.

존 영은 미 우주개발사상 정부의 제미니 계획, 아폴로 계획과 우주왕복선 계획등 이른바 ‘3세대’의 우주개발사업을 모두 거친 유일한 우주비행사였다.

우주 비행을 6번이나 한 유일한 우주인이었으며, 달 표면을 걸은 사람으로는 9번째였다고 NASA는 발표했다. 

NASA의 로버트 라이트푸트 국장대행은 이메일 발표문에서 존 영이 미국 초기 우주개발 그룹의 주요 멤버였으며 그 용맹과 헌신으로 최초의 우주 개발 업적을 성취하는데 불을 붙였던 가장 위대한 우주비행사였다며 고인을 기렸다. 

존 영은 NASA에서 제미니, 아폴로, 우주왕복 프로그램 전체를 거친 유일한 우주인으로 6번이나 로켓을 타고 우주 밖으로 비행했는 데 1972년 아폴로 16호의 선장으로 달에서 다시 지구로 귀환한 것까지 하면 실제로는 총 7회의 우주 여행으로 수십년간 세계 기록을 유지해왔다. 

1960년대 제미니 계획에서는 2인조로 2회 비행을 했고 아폴로 계획 동안에도 달에 두 번 갔으며, 1980년대 초부터는 새로운 우주선 콜럼비아호에 2번 더 탑승했다. 

NASA의 우주비행사로는 최장수 기간인 42년간 일한 존 영은 부하 비행사들의 안전을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해왔고 NASA의 현상유지를 위해서는 언제나 직언을 서슴치 않는 성격으로 상사, 동료, 후배 등 모든 사람들의 존경을 받아왔다. 

1967년 아폴로호 발사장 화재로 3명의 우주비행사가 사망한 사건을 겪은 존 영은 1986년 우주 왕복선 챌런지호의 사고 때와 2003년 우주왕복선 콜럼비아호의 대기권 재진입시 분해된 사건에 이르기까지 비극적인 사고들을 지켜보면서 면밀한 감독과 비판을 계속해왔다. 

존 영은 2012년 회고록 ‘Forever Young’에서 언제나 안전 문제가 제기되거나 그런 우려를 들을 때마다 언제 어디서든지 메모나 편지 등을 이용해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이 문제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고 모든 사람들 관심을 집중시키려고 노력했다고 회고했다. 

특히 두 번의 우주왕복선 사고 사이의 기간에는 NASA에서는 좀체로 있기 어려운 엄청난 양의 ‘산더미 같은 메모지’를 통해서 자신의 상사들을 직접적으로 공격했고, 지금까지도 NASA의 전설적인 사건으로 남아있다. 

1969년 인류 최초로 달착륙선 아폴로 11호를 타고 달궤도를 항해했던 마이클 콜린스, 닐 암스트롱, 버즈 올드린 등 우주인들은 존 영에 대해
항공우주국 안에서는 ‘메모쓰기 챔피언’이었다고 회고할 정도였다.

다른 동료들이 다 은퇴해서 목장이나 다른 곳에서 푸른 초원의 유유자적한 생활을 즐기며 한가로운 생활을 할 때도 존 영은 혼자 NASA에 남아서 70대가 넘도록 조직의 안전과 양심을 지키는 역할을 하다가 2004년에 은퇴했다. 

존 영은 1990년대와 2000년대에 미국의 우주개발 사업이 위축된 데에 대해서 지금보다 2~3배는 더 우주 탐험을 증가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달 개발사업의 상업화와 수많은 우주선 여행의 상용화는 물론, 지구를 위협할 수도 있는 더 많은 소행성들과 다른 별들에 대해서도 탐사를 더 많이 확대시켜야 한다고 기회있을 때마다 강조했다.

존 영은 지난 2000년,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우주 탐험 증가 주장에 대해 국가에 필요하고, 세계에 필요하고, 인류 문명에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 자신은 NASA에 오래 있지 않을 거니까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라고 말하며 웃기도 했다. 

존 영은 회고록에서도 우주 탐험 필요성을 언급했는 데 언젠가 인류가 지구 보호를 위해서도 다른 행성에 가서 살 필요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존 영은 설사 사람들이 자신에게 미쳤다고 지적한다고 해도 우주 탐험 필요성에 대한 홍보와 교육을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소신을 밝혔다. 

존 영은 NASA에서 마지막 17년간을 휴스턴의 존슨우주센터에서 주로 안전관리 등을 감독하면서 근무했다.

1952년 조지아 공대에서 우주항공공학 학위를 취득한 존 영은 해군에 입대해 한국전쟁에서 포병장교로 참전했고, 나중에 해군 전투기 조종사를 거쳐 테스트 파일럿으로 일했다. 

존 영은 평생 100개 이상의 주요 훈장과 시상을 받았으며 그 중에는 1981년의 권위있는 의회 스페이스 명예 메달도 포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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