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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이태리 투어

글쓴이: 유강호  |  등록일: 04.08.2012 09:51:16  |  조회수: 7499
이태리 커뮤니티 North Beach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에서 가까운 이태리타운에 가면 열정적이고 감성적인 사람들이 만든 요리와 경쾌한 노래를 들을 수 있다 . 노스비치지역 약 1.6km길이의 리틀이태리에는 카페로마 , 초콜릿샵 , 모나리자 ,마카로니, 푸치니 , 재즈 클럽이 있다 .부드러운 티라미슈와 카푸치노 우유거품을 델루치카페에서 즐기는 시간은 낙천적인 이태리 사람들과 함께 시네마 천국으로 안내한다 .


영화 <대부>의 시작처럼 가난을 떨치려고 이탈리아에서 힘겹게 대서양을 건너온 이민자들이 첫 보금자리를 마련한 샌프란시스코는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 시인이자 화가였던 로렌스 페링게티, 뱅크 오브 아메리카의 설립자인 아마데오 지아니니 등 이탈리안 아메리칸들이 새 역사를 기록했다 .


샌프란시스코 예술가들이 피자 한조각 ,맥주 한잔 앞에 놓고 맛있는 수다에 밤새는 줄 모르는 동네다 . 뉴욕의 리틀 이탈리아와 차이나타운이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는 것처럼 샌프란시스코의 이태리타운과 차이나타운도 이웃이다 .


1830년대 불안한 정치상황과 생활고에 시달리던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미국은 새로운 기회의 땅이었다. 샌프란시스코 부두가와 노스비치 한쪽 구석에 야채상과 해산물전문점을 경영하며 이탈리아 커뮤니티는 둥지를 넓혀간다 .


'리틀 이태리'에 가면 광장에 자유로운 공원, 아름다운 성당, 낭만에 흠뻑 젖는 카바레가 있다 . 치즈의 왕이라 불리는 파르미지아노가 풍부한 식료품상점, 이태리 풍의 페이스트리 전문점을 지나면 마늘레스토랑 스팅킹로즈 ,젤라또 아이스크림 가게다 .


이탈리아에서 직접 공수한 식재료를 판매하는 팔레르모 델리카테슨은 노스비치의 명소로 포카시아 빵을 사려는 사람들로 붐빈다 .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매우 좋아했던 스텔라 파스티체리아도 잊지말자 .
시티라이츠도 빼놓을 수 없는 장소다 . 이 유명한 서점에서 시집을 뒤적거리면 잭 캐루악과 알렌 진스버그, 헨리 밀러의 철학과 문학 에센스가 재즈음악으로 스르르 흘러나온다 . 베수비오스 바에서 연인들은 로맨틱한 소설을 쓰며 캐루악의 이름을 딴 캐루악 술로 쨍그랑 귀가 즐겁게 건배한다 .


샌프란시스코의 밤문화와 함께 자유분방한 분위기가 넘쳐나는 노스비치는 1950년대 태동한 이른바 ‘비트닉 (Beatnik)’ 컬처의 본산이다. 비트문화는 노스비치에 있는 비트 뮤지움 (The Beat Museum)에서 자세히 살펴 볼 수 있다.


원래 노스비치는 1906년 대지진으로 커뮤니티가 거의 완전히 파괴되다시피했는데, 이탈리아 계 이민자들의 피와 땀으로 재건됐다. 세인츠 피터 앤 폴 처치 (Sts. Peter and Paul Church) 또한 그런 유산 가운데 하나로, 이탈리아계 어부들이 주로 예배를 올렸던 성당이었다.


노스비치는 클린트이스트 우드 주연의 영화 ‘더티 해리 (Dirty Harry)’를 비롯해, 80년대 인기 TV 시리즈 였던 ‘스트리트 오브 샌프란시스코 (Street of San Francisco)’ 등 많은 영화와 TV극 등의 배경으로도 등장했다. 매년 5월 중순 열리는 노스 비치 페스티벌은 미국내에서 가장 오랜 전통을 가진 거리 축제로 여행자들이 때맞춰 모여든다 .


친절하고 말붙이기 좋아하는 사람들, 클래식 기타를 든 거리의 악사가 있는 이태리타운에서 한가롭게 산책할 코스를 소개한다 .
워싱턴 스퀘어와 세인츠 피터 앤 폴 성당 Columbus Ave + Grant + Green / 베수비오스 바(Vesuvio's Bar): 255 Columbus Ave.


샌프란시스코 노스 비치 워킹 투어는 리틀 이태리에서 3시간 동안 음식과 재미있는 스토리를 듣는 특이한 경험이다 . 강력하게 추천한다 .
http://www.extranomicaladventures.com/KOREAN/SAN_FRANCISCO_WALKING_TOURS.htm
샌프란시스코 리틀이태리 홈피에 가면 더 많은 정보가 있다 www.sfnorthbeach.org


리틀이태리 워킹 투어에서 배운 신화적인 인물 아마데오 피터 지아니니의 은행이 있던 곳은 지금 샌프란시스코 상징건물 트랜스 아메리카 피라미드 주변으로 그 일대 땅은 지아니니의 영역이었다 . 지아니니는 뱅크 오브 아메리카의 전신인 뱅크 오브 이탈리아를 만들었다.

제노아 출신의 아버지 루이기 지아니니는 기득권을 가진 앵글로색슨계를 피해서 대도시 대신 서부를 택했다. 카톨릭교도였던 루이기는 부인과 함께 캘리포니아 산호세에서 새 삶을 시작했다. 1870년 봄, 아주 허름한 호텔 방에서 큰 아들 아마데오를 얻었다. 아마데오가 열 살이 되던 해에 경제적으로 허덕이던 루이기는 병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그러자 어머니 비르기니아는 과일장수 로렌조와 재혼하고 샌프란시스코로 거처를 옮겼다. 사업수완이 꽤 좋은 새아버지 밑에서 자란 아마데오 지아니니는 공부보다 장사하는 데에 더 재미를 붙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농부들에게 새로운 농약이나 농기구들을 팔면서 구매자금을 빌려주는 사업에 뛰어들었다. 새아버지와 동업하는 동안 지아니니는 부지런하다고 소문이 났다.

열아홉 살이 되던 해에 부동산 중개업자인 코네오의 딸과 결혼했다. 장인이 세상을 뜨면서 60만 달러나 되는 재산을 물려받았다. 지아니니는 서민은행이라는 새로운 금융사업 모델을 세우고 함께 투자할 주주들을 모았다. 이 은행의 주 고객층은 샌프란시스코의 리틀이탈리아 지역에 거주하거나 사업하는 사람들이라서 은행 이름을 뱅크오브이탈리아라고 붙였다. 지아니니는 술집을 개조해 만든 자기 회사를 난쟁이은행이라고 불렀다.


스스로 전재산을 예금하면서 모범을 보이자 이 사업은 곧 번창할듯 했다. 그런데 은행을 세운지 2년째인 1906년에 샌프란시스코에 대지진이 닥쳤다. 샌프란시스코 교외에 살고 있던 지아니니는 지진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뉴스를 듣고 트럭을 빌려 타고 미친 듯이 사무실로 달려갔다. 직원들과 함께 돈과 장부들을 두 대의 트럭에 가득 실었다. 돌아오는 길에 지진이 시작됐다. 은행은 간신히 위기를 피했다. 대부분의 금융기관들은 녹아버린 금고 속의 현찰과 함께 잿더미가 되었다.


지아니니는 그의 인생을 금융업에 걸기로 하고 경쟁자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영업을 재개했다. 폐허가 된 길거리에 천막을 치고 사람들을 만났다. 사업내용이 확실하다면 구입물품을 담보로 구매대금을 선뜻 내주었다. 얼굴 한번 보고 서류에 사인만 하면 쉽게 돈을 빌려준다는 소문이 나자 영세 자영업자와 중소기업 사장들이 구름같이 몰려왔다.


탐욕스런 사업욕구를 가진 지아니니는 "자칫하면 백만장자 되겠네!"하고 놀라면서 자선사업으로 재산을 줄이느라 소동을 피웠다. 디즈니에게 선뜻 돈을 빌려주면서도 제작에 참견을 하지 않아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같은 걸작을 탄생시키는 데 일조했다 .


지아니니는 샌프란시스코 지역에서 지진 피해가 비교적 적었던 지역에 처음으로 지점을 세웠다. 이후 샌프란시스코 시내에서 지점을 여러 곳 세우고 곧 이어 로스엔젤레스까지 진출했다. 뱅크오브이탈리아는 뱅크 오브 아메리카의 전신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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