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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 역사 – L. A. 이야기

글쓴이: Artchocolate  |  등록일: 10.30.2014 13:17:34  |  조회수: 15648

옛날, 서울을 ‘경성’이라고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 그 당시에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L. A.를 글자 그대로 ‘라’로 읽고 도시를 의미하는 ‘성’ 이란 글자와 합쳐져 라성 (나성; 두음법칙에 의해 나성이라고도 읽힘) 이라고 부른 적도 있었다.

 

그래서 ‘나성에 가면 편지를 띄우세요 ’라는 노래도 있었는데 이 곡은 길옥윤씨가 작사 작곡하고 새샘 트리오가 불러 히트했던 1970년대의 애창가요였다. 그야말로1970년대에 L.A.로 이민 왔던올드타이머들의 추억의 러브 이었다.

 

그런데나성에 가면 노래는 올해 초, 영화 ‘수상한 그녀’에서 심은경이 다시 불러 화제를 모으기도 했는데 오늘은 여러분과 함께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 ‘L.A.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곡을 함께 감상해 보기로 하자.

 

(오늘 여러분과 함께 나눌 ‘L.A.이야기’는 아주 오래 전의 옛날 이야기로 미국이 생기기도 전인 스페인 식민지 시절의 이야기이다, 그래서 조금 낯설기는 해도 당 시대의 발음대로 영어가 아닌 스페인어로 발음표기를 하였다.)

 

때는 1769년 7월 초, 캘리포니아 미션을 목적으로 구성된 최초의 탐험대가 San Diego [산디에고]를 시작으로 해안가를 따라 북상하였다.  해안가에서 조개를 비롯한 해산물 먹거리를 수집하는 인디언들을 보며 탐험대는Playano [플라야노]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이는 해안가 인디언이라는 뜻이다. 반대로 산악 지역의 인디언들을Serrano [세르라노] 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오늘날 코리아타운의Serrano 라는 길 이름도 여기에서 비롯 된 단어이다.

 

바닷가 인디언들의 생활상을 충분히 체험한 탐험대는 산악 지역의 인디언들의 생활상을 체험하기 위해 지금의 다나포인트 지점에서 방향을 북동쪽으로 잡고 탐험을 지속하여 8월 2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Los Angeles [로스 앙헬레스]에 도착하였다. 북동쪽으로 높은 산맥이 병풍처럼 막고 있으며 서남쪽으로는 아름다운 강을 끼고 넒은 평원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지역이 풍요롭고 기름진 땅임을 발견한 (당시 미션 팀의 기록을 담당했던) ‘Fray Juan Crespi [프라이 후안 크래스피]’ 신부는 기도 중에 이 지역을 가리켜,

¡Nuestra Señora, la Reina de Los Angeles de Porciuncula !

라고 표현했는데 이를 직역하자면 [포션컬라의 성스러운 천사들의 우리 여왕님] 이라는 뜻으로 여기에서 지금의 ‘로스 앤젤레스’ 라는 도시명이 유래되었던 것이다.

 

그 후, 12년이 지난 1782년, 당시 샌디에고 요새와 산타바바라 요새에 주둔중인 스페인 군대의 식량조달을 위해 당시 캘리포니아 주지사였던Felipe de Neve [펠리페 데 네베]는 풍요로운 땅인 로스앤젤레스 지역에 농장을 건설하기로 결정 하였다.

 

그래서 그 농장을 운영할 전문 농부들을 모집하였는데 지금의 멕시코 Sonora[소노라] 지역의 Los Alamos[로스 알라모스] 마을에서 12가구의 용기있는 전문 농부들이 모집에 응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정든 고향을 등지고 낯선 인디언의 세계인 로스앤젤레스로 찾아왔던 것이다.

 

그들은 아내와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군대의 호위를 받으며 로스앤젤레스에 도착을 했는데 농부들을 인솔한 호위군관 중에는 39세의 Francisco Xavier Sepulveda [프린시스코 하비에르 세풀베다] 대위가 있었다.

 

세풀베다 대위는 당시의 상황을 그의 일지에 다음과 같이 적어놓았다.

 

- 소노라의 로스 알라모스 마을을 출발하여 멕시칼리를 경유하여 높은 산맥을 넘고 넓은 사막을 지나 죽을 고비를 수 차례 넘기며 7개월이라는 긴 세월을 견디며 여행한 끝에 1781년 8월8일, 우리는San Gabriel Misión [산 가브리엘 미션; 오늘날 LA동쪽 몬테벨로 지역에 위치한 성당의 이름]에 도착 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여행 도중 천연두에 전염되었다는 이유로 우리는 그곳에서 17일간이나 격리 수용되기도 했었다. 그 후, 격리실에서 풀려난 우리는 로스앤젤레스 강을 향하여 더위와 또, 먼지와 싸워가며 강행군을 지속하여 9월 4일 마침내 로스앤젤레스의 동쪽 강둑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올해의 여름은 유난히도 무더웠다.

강기슭을 따라 지친 발걸음을 옮기다가 발견한 얕은 곳을 택하여 우리 일행은 조심스럽게 강을 건너기 시작하였다.

강을 건너자 마자 우리는 12년 전에 로스앤젤레스를 처음으로 발견했던 최초의 탐험대가 텐트를 쳤다던 바로 그 자리에 임시로 거처를 마련하고 밤을 보내기로 했다.       

(바로 이 지역이 오늘날의 다운타운Olvera[올베라] 거리 지역으로 1953년, 주립 역사 보존 지역으로 지정된 장소이다.)

 

멀리 남쪽과 서쪽 방면의 야산 (지금의 L.A.시청과 법원이 있는 자리)위에서 세라노 인디언들이 낯선 이방인들이 그들의 당나귀로부터 짐을 푸는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서 호위 부대원들의 경계를 강화 시켰다.

 

그 동안에 나의 아내Maria de Redondo [마리아 데 레돈도]는 로스앤젤레스 강에서 물을 길어와 저녁식사를 준비하였고 아들들은 땔감을 모아 임시로 만든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로스앤젤레스의 최초의 저녁식사는 콩을 재료로 한 Tortilla [토르티야] 였다.

5남1녀의 자녀와 우리 내외는 저녁 식사 후, 불가에 둘러 앉아 로스앤젤레스에서의 미래를 설계하다가 잠이 들었다. -

                                                                    

(그 후, 세풀베다 집안은 로스앤젤레스의 토박이 집안이 되어, West LA 와 South Bay 지역의 대부분의 목장이 그의 일가의 소유가 되었는데 당시, 세풀베다 목장을 이어주던 목장 길은 지금의 sepulveda Ave와 sepulveda Blvd.[세풀베다 길]이 되어 오늘날까지 그 이름을 남기고 있다. 그리고Redondo Beach라는 이름도 세풀베다 부인의 집안 이름에서 비롯되었다. )

 

이처럼 12가구로 시작된 ‘로스앤젤레스’라는 작은 고을은 점차적으로 인구가 증가하기 시작하여 오늘날에는 캘리포니아에서 제일 큰 도시가 되었으며 미국 전체에서는 두 번째로 큰 도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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