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와 마음 이야기

김재명

JM Company 대표

  • 작곡가, 재즈 칼럼리스트/작가
  • Queens College of Music, New York, NY 석사

너를 기다리는 동안-----------------------------------재즈칼럼25

글쓴이: Panda  |  등록일: 04.18.2017 23:54:45  |  조회수: 5526

너를 기다리는 동안

I waited for you & I will wait for you






아침에 눈을 뜨자 마자
기억이 났어.
너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는 사실이.


얼마전까지 무력했던 마음엔
의욕과 생기가 느껴졌지.

왠지 신이나고
괜스레 설레이며
이것 저것 관심과 호기심이 생기더니
무엇이든 할 수 있겠다는 마음.

놀랍지 않니?

단지 너를 향한 마음을
숨기지 않고 열어보인 것 뿐인데

하루 사이
나는 변해 있었어.

너와 너의 조건을 버거워하지 않고
혹여 받을 상처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다시 누군가를 사랑하기로 선택한 내 자신이
진심으로 마음에 들었다.

너를
기다리기로 한 거야.


얼마전까지 나에게 기다림이란
너무도 아프고 힘든 일이었어.

그 기다림을 오랜 망설임 끝에 포기하고 돌아서던 날,
애써 최선을 다했다고 내 자신을 위로했지만
마음엔 이미 트라우마가 생겨 있었지.

진심을 다해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는 허탈감.
그것은 크나큰 상처였어.

치유되지 않는다면
그 상처는 앞으로의 삶에
영향을 끼칠 수 있었지.

모든 관계에 최선을 다 하고자 하는 순수한 의지가

상처받을 두려움으로 망설여지고
인간을 믿지 못하는 불신은 깊어질테니까.

그렇게 된다면
나도 그리고 나와 관계를 맺는 모든 사람들도
불행해 질 수 밖엔 없잖아?

그 순간,

좌절의 그 순간,
고통과 아픔의 그 순간,

어떤 선택을 하느냐는
인생의 내용을 결정짓는 중대함을 가졌어.


고통은 사람을 성장시킨다고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성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오히려 고통은
사람을 강퍅하고 이기적으로 만들 수도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지켜봐야만 했던 지난날들이었지.


나역시

어떻게든 선택을 해야하는 기로에 서 있었어.

트라우마로 인한 상처가 욱신거릴 때마다
우울해지고 자신감이 없어지며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상처 받은 마음을 쫒아가는 길.

얇디 얇은 시간이란 장막에 가리워져
괜찮아진 듯 보이다가도
상처가 건드려지면
두려움에 벌벌 떨며 도망가버리는 삶.

그래서,
자신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삶.

또 다른 선택은
트라우마를 직시하고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길.

당장은 너무도 아프고 힘들지만
그 상처가 고스란히 힘이되는 삶.

그래서,
자신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유익함을 줄 수 있는 삶.


나에게 행복은 타협의 대상이 아니었기에
후자를 선택하기로 결심했다.

선택에 대한 실천을 위해
상처를 찬찬히 들여다 보았어.

왜 나에게 기다림은 그토록 아픔이었을까?

불행했던 나의 기다림을
있는 그대로 반추해 보려 노력했지.

그러던 중
궁금해지더구나.

다른 사람들에게 기다림이란 어떤 것일까 하고.

다른 관점과 다른 마음은
다른 결과를 낳을 수도 있지 않을까 추측해 보면서
기다림에 관한 곡들을 뒤져보기 시작했어.

그렇게 찾아낸 두 곡은

마음을 정리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첫 번째 곡은 'The Incredible Chet Baker Plays and sings' 라는 앨범에 수록된I waited for you라는 곡이야.

사랑하는 누군가를 기다렸던, 과거 기다림에 대한 회상을 담고 있어.
여기서 묘사되고 있는 기다림은 아련하고 아름다워.

아련함은 뮤트된(muted) 프럼펫으로 표현되고 있는데,
음악에서 악기가 뮤트되었다는 것은 소리의 볼륨을 줄이고 음색을 변화시키는 특정한 도구나 장치를 이용해서 연주한다는 뜻이야.

과거의 추억을 회상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음색이 있을까 생각되더구나.

그리고 플롯 소리, 너도 들었지?
이 곡에서는 아름다움이라는 또 다른 큰 축을 담당하고 있어.

재즈라는 환경에서 플룻은 더 부드럽고 더 섬세하게 들려서 아름답게 느껴지거든.

두 악기는 이렇게
과거의 기다림을 회상하는 주인공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지.

특히, 대위법적으로 어우러지면서 만나지는 두 악기의 선율은 유독 귀를 잡아끌더라.
대위법이란, 한 음악 안에서 하나의 톤으로만 이야기하지 않고 여러 톤으로 섬세한 감정이나 생각을 표현하는 기법인데,

이 곡의 경우, 뮤트된 트럼펫과 플룻이 만들어 내는 각각의 선율은
서로에게 종속되지 않은 채 독립적으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이끌어 가고 있었어.

그러나 오히려,
이러한 설정이 아련함(뮤트된 트럼펫)과 아름다움(플룻)이라는 서로의 이야기를 더욱 돋보이게 해 주는 역활을 하고 있으니 아이러니한 창작의 묘미라고나 할까?

마지막으로 주목해야 하는 부분이 있어.

이 곡의 주제를 함축적으로 표현한 부분인데 그 표현방식이 참 인상적이거든.
주로 빅밴드에서 쓰이는 리듬적 유니슨(Rhythmic Unison)의 방식을 이용해서 두 악기가 리듬적으로 동일하게 연주되게 했어.


뮤지션의 의도를 아주 효과적이고 적절하게 전달해 낸 탁월한 선택이라고 평가하고 싶어.

과거 어느 기간 사랑하는 누군가를 기다렸다 라는 그 사실자체를 미사여구 없이, 과한 감정의 낭비 없이, 담담히 있는 그대로 서술함으로써 오히려 더 큰 감정적 감동을 이끌어 내고 있었으니까.

결국,

모든 것을 뛰어넘은

현재 주인공의 승화된 마음을 잘 묘사하고 있었지.


이 곡을 수차례 듣고 있자니

또 다른 관점에서 기다림을 바라보게 되더라.


어쩌면
인간에게 기다림이란
그 내용이 어찌 되었든- 아픔이었든 그 무엇이든-
삶의 한 과정이며 열정이고 살아있음의 표현이 아닐까 하고 말이야.

그리고

아픔조차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힘,

그것에 관해서 묵상하게 되었다.



자기 중심적인 관점에서 바라본다는 것은

아픔과 상처를 양산할 확률이 높아.


자신의 상황과 감정이

전체를 보지 못하게 하고 왜곡시키기 때문이지.


하지만,


타인과 나, 전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관점은

따듯한 사랑으로 승화될 수 있어.


자신과 타인의 허물조차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이해한다는 것은

모든 것이 그 자체로 온전하다는 것을 아는 지혜이기 때문이야.



덕분에

상처 치유는
조금 더 속도를 낼 수 있었어.


그러던 어느 날,

길 모퉁이에서

상처투성이로 버려진 너를 발견하게 됐지.

예상치 못한 시간에

예상치 못한 만남이었기에

불안과 당황함을 느꼈어.

'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해' 라며

도망가려 했거든.


망설임과 혼란 속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두번째 질문이

날카로운 칼끝이 되어 나를 겨누었다.




'아주 오랜시간이 걸린대도 나는 당신을 기다릴거에요.'


답은 이 단순한 노래 속에 있었어.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이 익살스럽게 그리고 쉽게쉽게 부른 듯한 이 곡은 I will wait for you 라는 곡이야.

이 곡 속 기다림은
불행했던 나의 기다림과는 달리

기꺼움과 여유 그리고 행복마저 느껴져.

무엇이
이 기다림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사랑하는 사람이

꼭 돌아와주기를 바랬었어.


그것이 나의 기다림의 목적이었지.

그 바램이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목적이 간절해 질수록
그 목적을 이루기 전까지의 모든 과정은
고통일 수 밖엔 없었던 거야.

암스트롱의 노래 속 기다림은

기다림 그 자체가 목적같이 느껴지더라.

그래서
기다림의 매 순간이 행복할 수 있었던 거겠지.



다시 사랑을 해야겠지?


이제

결과는 그리 중요치 않아.



타인과 세상을 향한 마음을
활짝 열어 놓는 한,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는 한,

나는
추락하지 않을테니까.


너를 기다리는 동안


사랑함으로써

더욱 강해지고, 더욱 성장하며, 더욱 지헤로와 질거야.



쉼없는 나의 사랑이

근사한 한송이 꽃이되면


사랑만이 모든 존재의 유일한 삶의 방식이라는 것을

진심으로 이해하게 되겠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의 사랑은 완전해 질테니.




J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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