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야기

이웅진

결혼정보회사 선우 대표

  • 현) 웨딩TV 대표이사
  • 전) 우송 정보 대학 웨딩이벤트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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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스토리 ] 오래 전 빗물처럼 흐르던 커플매니저의 눈물

글쓴이: sunwoo  |  등록일: 07.05.2017 23:49:15  |  조회수: 3942

비 내리던 돈암동 고개에서 오래 전 빗물처럼 흐르던 커플매니저의 눈물이 떠올랐다.
- 선우 CEO 이웅진

주말 내내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비가 쏟아졌다.

폭우에 발이 묶인 서울의 일요일. 그 와중에도 일이 있어 집을 나섰다.
돈암동 성신여대 입구에서 길음동으로 넘어가는 도로를 지나는데, 우측에 들어선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보면서 문득 상념에 젖었다. 떠오르는 얼굴이 있어서다.

선우 26년 동안 800명이 넘는 커플매니저들이 근무했다.
커플매니저 사관학교라고 불릴 정도로 선우에서 경험을 쌓아 유능한 매니저가 되거나 다른 회사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사람들이 많다.
또한 이들의 경험과 노하우는 선우 매칭시스템에 반영되어 매칭적중율을 높이는 기반이 되기도 했다.
 
선우를 거쳐간 그 많은 매니저들 중에 유독 기억이 나는 사람이 있는데,
김OO 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이다. 돈암동 고개가 미아리 고개로 더 많이 불리던 시절, 90년대 초반의 일이니 벌써 25년이나 지난 일이다. 그녀는 선우가 처음으로 매니저 모집을 했을 때 지원했다. 말하자면 선우 커플매니저 1이다. 하지만 커플매니저라는 명칭은 그 몇 년 후부터 사용했으니까 당시 그녀는 그냥 상담원이었다.

선례가 거의 없는 사업을 하다 보니 많은 문제가 발생했고, 그런 상황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나한테 있었다. 가까운 친구들이나 가족과도 나눌 수 없는 고민을 혼자 짊어진 외롭고 힘든 시간이었다. 더구나 첫 사업이었던 화장지 판매를 시작으로 독서회를 거쳐 선우 초창기에는 나 혼자 일을 했기 때문에 김OO 씨가 입사했을 때는 그 존재만으로도 힘이 되었다.
 
더군다나 김OO 씨는 일도 야무지게 하고, 매사 똑부러진 사람이었다. 나랑은 나이가 비슷해서 서로 의지가 되었고, 힘든 일이 있을 때는 소주 몇잔 함께 마시면서 고단함을 풀곤 했다. 그 때 김OO 씨는 갓 결혼해서 미아리에서 신혼생활을 하고 있었다. 물 한컵 떠놓고 결혼식을 올렸을 정도로 맨 주먹으로 시작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일이 절실하게 필요했고, 그만큼 열심히 일했다.
 

지각 한번 없던 사람이 어느 날인가 결근을 했다.

지금처럼 휴대폰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연락도 안되어서 걱정이 되었다. 다음 날 오후쯤인가 그녀가 눈이 퉁퉁 부어서 출근을 했다. 지금의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기 전의 미아리는 쪽방촌처럼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던 있던 동네였는데, 장마철에 내린 폭우로 집이 물에 잠겨서 이불이며 세간들이 다 젖어서 그것들을 다 씻고 말리느라 출근을 못했다는 것이다. 장맛비가 쏟아지던 돈암동 고개에서 어렵게 장만한 살림이 다 젖었다며 울먹이던 그녀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참 힘들게 일했던 그 시절의 기억들이 되살아났다.

선우 초반에는 가입고객들 대부분이 농촌총각처럼 만남조차 어려웠던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어찌어찌해서 만남이 성사가 되어도 여성들의 불만이 많았고, 매일 클레임에 시달렸다. 그래도 열악한 조건의 고객들에게 만남의 기회를 만들어주기 위해 우리는 열심히 일했다. 김OO 씨도 본인도 어려운 처지에서 결혼을 해서인지 고객들의 사정을 공감해주고 같이 고민하면서 만남을 진행했고, 좋은 결과가 있으면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김OO 씨 같은 매니저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우리나라 결혼사업은 선우 전과 후로 나뉜다고 할 정도로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그 중 하나가 선우 전에는 주말 호텔 커피숍에 진을 치고 있던 할머니들이 있었다. 중매를 하기 위해 나온 마담뚜들이었다. 선우 이후에는 이분들이 거의 없어졌다. 음지의 중매사업이 양지로 나왔다고 할 수 있다.
  
김OO 씨는 몇 년 일하고 그만두었다. 내가 지금처럼 연륜이 쌓인 나이였다면 잘 다독거리고 퇴사를 말렸을텐데, 당시 20대 중반의 한창 혈기 왕성하고 경험이 없는 초짜였던 나는 그만둔다는 그녀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그냥 보냈다. “사장님처럼 야무진 아들을 두고 싶다”던 그녀는 얼마 후 아들을 낳았는데, 아마 지금쯤 군대를 갔다 왔을 것이다.

오랜 가뭄에 반가웠던 장맛비, 그 거센 빗줄기 속에 어려운 시절을 함께 했던 그리운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고, 내 마음을 울렸던 그녀의 눈물이 자꾸 머릿속을 맴도는, 그런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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