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동계 올림픽이 비교적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올림픽 위원회의 우수한 준비와 경기 진행에 정성과 최선을 다한 서수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올림픽 행사가 평창, 진부, 및 강릉에서 열렸는데 저도
행사가 가장 많이 열리는 강릉을 방문하여 자원 봉사자들을 격려하고 왔습니다. 세계 각국에서 찾아 오는 방문객들에게
각기 자기네 나라 말로 길 안내를 해주고 택시를 잡아주며 휴식공간을 제공해줄 뿐만 아니라 음료와 붕어 빵도 즉석에서 무료로 만들어 주는 자원 봉사자들이
대견했습니다. 이번 동게 올림픽을 통하여 대한민국의 위상이 더 한 층 선양되었으리라고 믿습니다.
다른 선진국에 비하여 열악한 훈련 시설과 작은 체격에도
불구하고 좋은 성적을 이룩한 한국 선수들도 자랑스러웠습니다. 한편 남북간의 정치성 개입으로 표출된 크고 작은
사태로 인하여 국론 분열에 부채질을 한 듯한 모습은 유감이었습니다. 한 편 올림픽에 참가한 선수들에 대한
노파심도 갖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올림픽 메달을 위하여 피땀 흘려 연습했지만 메달을 얻지 못한 선수도 있었고1/100초 차이로 금메달을 놓진 선수고 있었습니다. 경주 초에는 뒤에 처졌다가
종점을 수분 남겨 놓고 총알 같이 질주하여 극적으로 금메달을 획득한 선수도 있었고 경주가 끝나자 펑펑 운 선수도 있었습니다, 바라건대 일시 찬란했다가 시들어 버리는 세상적인 영광과 목표를 달성된 환희나 목표를 성취 못한 실망이 참가 선수의 마음 가짐과 자긍심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선수 여부를 떠나서 세상적인 목표에 집착이 심하면
잠정적인 성취 여부에 상관 없이 실의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영구 불변의 원대한 목표를 갖고 있으면 찬란한
세상적인 목표는 짧은 단계에 불과합니다. 원대한 목표라하면 인격도야가 그 일례이겠습니다. 인격의 도야 없이 이룩한 세상적인 영예는 원대한 불변의 목표를 향해 달리는 과정에서 보너스가 될 지언정 세상적인 목표 자체가 사람됨을
과도하게 좌우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절세의 미와 요염한 인기를 누리던 머릴린 몬로와 한국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연예인들이 허탈감을 이기지 못하여 자살을 했습니다. 대부호의 자식이 인생의 허무감을 이기지 못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어네스 헤밍웨이도 자살을 했습니다, 어렵게 얻은 영예가 바램의 전부였다면 목표를 달성한 후의 느낌은 “이제 뭐를 위하여 살까?”
하는 허탈감을 갖게 될 수 있습니다. 영광과 환희감도 영구불멸의 원대한 목적과 연결되지
않으면 이와 같은 위험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