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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민 과거
  케세라세라
조회 1,416 | 07.14.2017  



‘사랑과 야망’, ‘왕과나’, ‘크크섬의 비밀’ 등에서 당찬 연기를 펼쳐 온 김정민이 라틴 풍의 신나는 댄스곡 ‘넌 아냐’로 가요계에 데뷔했다.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 다양한 끼를 보여준 터라 가수로서도 성공할 거라는 예상들이 많다. 항상 밝은 미소를 보여주는 김정민. 그러나 그녀의 가슴 속에는 누구보다도 힘들었던 성장기가 숨어있다. 김정민은 인터뷰가 깊어지자 누구에게도 하지 못한 슬픈 가족사를 꺼내놓았다.

연기는 잠시 미뤄둔 김정민은 요즘 가수 활동 준비로 정신이 없다. 라틴풍의 댄스곡을 부르다 보니, 춤도 춤이지만 몸을 만드는 일도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 평소에도 워낙 운동을 많이 해왔지만, 이번에는 정말 제대로 덤비고 있다.
“할리우드 여자 배우처럼 몸을 만들 싶어요. 평소에도 그렇지만, 쉬는 날에도 그냥 운동만 해요. 딱히 할 일이 없어서요. 친구들도 너무 오랜만에 만나다 보니 매번 동창회 같아서 좀 어색해요. 나중에 한꺼번에 만나자며 미뤄뒀어요. 지금은 뛰어야 할 때 거든요.”

연예인의 사생활을 속속들이 알 수는 없지만, 그녀는 정말 일과 운동 밖에 모른다. 그 중에서도 요즘은 운동이다. 먹는 음식도 콩국수와 두부 등 근육을 만들기 위해 주로 콩이 들어간 음식이다. 다이어트는 노래 연습 하는 동안에 자연스럽게 빠졌다. ‘도전 1000곡’ 프로그램을 봐서 알겠지만, 그녀는 비주얼 중심이다 보니, 노래 연습에 많은 공을 들여야 했다. 아무튼 지금 눈에 보이는 김정민은 딱 보기 좋다.

▲ 사진 / 신승희

나이는 스물 하나, 하지만 연기 경력은 6년

1989년생 김정민은 이제 스물 한 살이지만, 연기 경력은 벌써 6년이나 됐다. 그의 얼굴이 나이에 비해 더 익숙한 것도 오랫동안 봐왔기 때문이다. 데뷔작은 2003년부터 2005까지 방영된 청소년드라마 ‘반올림’. 방영초기에는 비중이 작았지만, 나중에는 주인공만큼 비중이 커졌다. 연기력이 계속 느는 스타일이거나 독하게 했거나 둘 중하나다.

“연기공부 없이 활동을 시작했어요. 생전 연기 한 번 안 해보고, 반올림 공개오디션에 붙었으니, 기적 같은 일이었죠. 촬영은 당연히 힘들었죠. 촬영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소리가 ‘너 때문에 재촬영이야’ ‘자꾸 카메라 쳐다보지 말라고!’ 이런 거였어요. 연기는 둘째 치고 카메라 앞에서 어찌할 줄 몰라서 너무 힘들었어요. 많이 울었어요. 그래도 잠 안자고, 이 악물고 대본을 외웠습니다. 그 덕에 나중에는 가장 많은 발전을 했다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당찬 여자. 연기 공부를 따로 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는 예나 지금이나 없다. 연기자체가 다른 인생을 사는 것이니, 학교보다는 차라리 현장에서 배우는 게 젤 크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런 정신력 덕분인지, 반올림으로 데뷔한 연기자 중에 가장 잘 나가고 있다. 그가 출연한 작품들은 줄줄이 좋은 반응을 얻었고, 특히 ‘사랑과 야망’에 출연할 때에는 김수현 작가로부터 “저런 친구가 연기를 해야 해” 같은 칭찬을 듣기도 했다. 대사량이 늘어난 것은 물론이다.

“워낙 가진 것 없이 시작한 연예 활동이서 많이 힘들었어요. 하지만 한 번도 그만둘 것이란 생각은 안 했어요. 손에 쥔 게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은 갑자기 뭔가를 잡으면 못 놔요. 힘들어서 못하겠다는 말은 다른 손에 또 무언가를 쥐고 있는 사람이나 하는 소리죠. 난 그 당시 손에 쥔 게 없는, 그저 운 좋게 그 자리까지 간 사람이니 이를 악물고 했어요.”

2년 가까운 시간 동안 방영된 반올림도 끝이 나자 김정민은 학교를 졸업한 느낌이었다. 단순히 드라마에 정이 많이 들어서는 아니었다. 김정민은 개인적인 이유로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니지 못했다. 학교에 대한 그리움 같은 것이 있다. 그래서 드라마 안 생활이지만, 마치 진짜 학교생활처럼 느껴졌다.

“교복을 원 없이 입어보고, 왕따도 당해보고, 수학여행도 다녀보고, ‘반올림’은 연기를 배운 것도 있지만 그런 추억이 더 커요. 그 나이에 해야 하는 것은 제 때 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물론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것은 최근 일이에요. 당시에는 작품 끝나고 나서 연기자들이 울고 섭섭해 하는 게 촌스럽다고 생각해 나만 쿨 하게 나만 웃으면서 나왔어요. 내 인생에서 이정도 쯤이야 잠깐 스쳐가는 일이야, 이렇게 생각했죠. 참 철이 없었어요.”

▲ 사진 / 신승희
잃어버린 학창시절

김정민의 고향은 전남 보성. 으레 서울내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렇게 물어보면 그냥 그렇다고 한다. 그녀가 고향 이야기를 아끼는 것은 지방 출신이라는 식의 치기 어린 생각이 아니다. 태어나서 열세 살까지 살았던 보성에 대한 기억은 웬만하면 되살리고 싶지 않다. 그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끔 악몽을 꾸곤 한다.

김정민은 중학교 1학년 때 학업을 포기한 채 여섯 살 남동생을 데리고 서울로 올라왔다. 엄마가 아빠의 난폭함을 이기지 못하고 집을 나간 지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녀의 아빠는 정상적인 가장이 아니었다. 서울에 오긴 했지만, 특별히 갈 곳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사전 예고 없이 집을 나간 엄마를 찾아가는 수밖에는...

“학교를 다니기 싫어서 안 다닌 게 아니고, 엄마가 집을 나가자 아빠가 학교를 보내지 않았어요. 안 믿을 수도 있는데, 아빠는 ‘여자는 살림만 잘 배워서 시집가면 된다’고 했어요. 중학교 1학년을 다녀야 할 여자 아이가 집에서 다섯 살 된 남동생을 키우게 된 거예요. 이러다가는 정말 내 인생이 엉망이 되겠다고 싶었어요. 또, 아버지가 너무 무서워서 엄마 없이는 함께 살 용기도 없었어요. 그래서 동생을 데리고 무작정 엄마가 있는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하지만, 서울에서 생활하는 엄마도, 상처받은 딸을 안아주기에는 스스로의 삶에 너무 지쳐 있었다. 거기에다 사춘기를 막 시작한 김정민 역시 극도로 예민해져서 엄마의 말을 잘 듣지 않았다. 최악의 상황. 그녀의 엄마는 동생만 맡고 김정민을 다시 보성으로 내려 보냈다. 하지만, 김정민은 아버지와 보성에서 지낼 자신이 없었다. 아버지가 없는 틈을 타서, 김정민은 다시 서울로 왔다. 엄마에게 사죄하고, 함께 살게 해 달라고 부탁했다. 말도 잘 듣겠다고 다짐했다. 엄마는 자신의 이혼을 도와달라고 말했다.

“따져 보면, 제가 엄마 아빠를 이혼시킨 거나 다름없어요. 엄마가 법원에 이혼을 신청했는데, 제가 엄마 편에서 진술서를 써주었어요. 엄마가 너무 힘들게 산 걸 봐왔잖아. 엄마가 집을 나가도 같은 여자로서 이해를 했던 부분이 있었어요. 아빠의 잘못에 대해서 내가 A4 용지로 몇 장짜리 글을 썼어요. 얼마 후, 이혼이 성립됐죠.”

김정민은 엄마가 원하는 대로 이혼이 성사되면 모은 게 해결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이혼이 성사 된 이후에 엄마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김정민과 동생을 다시 아빠에게 보냈다. 아이들을 키울 상황이 안 된 것이다. 하지만, 사랑하는 존재에게서 계속 버림받은 김정민은 상처를 너무 크게 받았다.

“내가 이혼을 시켰는데, 다시 날 아빠한테로 보내다니, 그때는 정말 상황이 지옥 같았어요. 지금도 솔직히 엄마에게 미운 게 있습니다. 내가 사춘기에 말을 안 들었다고 해도 큰 사고를 친 것도 아닌데, 나를 다시 보냈으니 당연히 미웠지요. 그 당시에는 날 이용하고 버렸다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지금도 가끔 당시 상황으로 돌아간 꿈을 꿔요. 그러면 소스라치게 놀라서 잠이 깹니다. 아직도 상처가 아물지 않은 모양이에요. 참 많이 힘들었던 시절이었습니다.”

▲ 최근 화보촬영으로 화제가 된 김정민

10시 16분 서울행 열차

다시 보성의 생활이 시작됐다. 아빠는 변한 게 없었다. 집에 아빠만 있으면 공포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김정민은 이미 보성에서 지낼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서울로 다시 올라갈 기회를 찾고 있었다. 이제는 서울에 올라가도 엄마에게는 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동생도 함께 가지 못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새벽 4시만 되면 잠이 깨서 엄마를 찾는 동생을 보면 얼마나 가슴이 미어졌는지 모른다.

“서울에서 미용실 하는 사촌 언니에게 나 좀 받아달라고 했어요. 그리고, 시골에 있는 사촌언니 친구에게 돈 빌려서 기차타고 서울로 올라갈 날 만 보고 있었어요. 그 날은 아버지가 술 드시고 집에 안 들어오셨어요. 떠날 때가 된 겁니다. 보성에서는 밤 10시 16분에 서울 가는 기차가 있어요. 세상모른 채 자고 있는 동생을 두고 나오는데 가슴이 너무 미어져서 미치겠더라고요. 그렇다고, 열세 살짜리가 여섯 살짜리 동생을 데려가 살 수도 없는 입장이었어요. 그나마 동생은 아빠가 아들이라고 예뻐했다는 걸 위안삼고 집을 나왔어요. 지금도 그 날 밤만 생각하면 동생에게 너무 미안해요. 하지만, 마지막으로 보성에서 지낸 4개월은 힘든 건 말할 것도 없고, 인생 끝나는 소리가 들려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어요. 남들은 고향 생각하면 마음이 짠해진다는데, 나는 그렇질 못해요.”

기억이 뚝뚝 끊기는 경험을 한 적이 있는가? 김정민은 당시 상황을 떠올리다 보면, 그와 같은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고 한다. 어느 시기는 무슨 옷을 입었는지까지 기억하는데, 어느 시기는 아주 까맣게 떠오르질 않는다고 한다. 상처를 많이 받아서 그런 것일 테다. 그녀는 어린 나이에 겪지 않아야 할 것들을 너무 많이 겪고 말았다.

서울에 올라온 이후에도 동생 걱정 때문에 마음이 늘 무거웠다. 미용실 일도 손에 익지 않았다. 하지만, 뾰족한 수도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보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미용실에 엄마가 불쑥 찾아왔다.
“신기한 게 전날 엄마가 오는 꿈 꿨는데, 정말로 오셨어요. 친척들을 수소문해서 찾아오셨어요. 엄마를 보면 미울 줄 알았어요. 엄마가 같이 살자 해도 싫다고 하고 욕하고 안 볼 줄 알았는데 막상 얼굴을 보니 그게 안 되더라고요. 어렸잖아요. 사실은 보고 싶었나 보더라고요. 엄마에게 나는 괜찮으니 동생 좀 데려가서 보살펴 달라고 그랬어요.”

김정민의 간곡한 부탁으로 엄마는 남동생을 데리고 왔다. 한 번에 성공한 것은 아니다. 남동생은 아빠가 무서워서 못 따라왔다. 그렇게 보성을 몇 번 내려간 끝에 기절시키다시피 해서 겨우 데리고 왔다. 그때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고 김정민은 쓸쓸하게 말한다. 동생은 엄마와 함께 살고, 김정민은 미용실에서 사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길거리에서 우연히 캐스팅

그 날은 미장원 일을 끝내고 지하철 출구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며 서 있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누군가 자신을 계속 쳐다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바바리코트를 입은 삼십대 후반의 남자가 정말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무서웠다. 다행히 그 남자는 김정민을 계속 쳐다보다가 사라졌다. 그러다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다시 다가와서 명함을 주고 사라졌다. 그 남자 지금 그녀의 소속사 대표 홍준화 씨다.

“연예기획사 명함이었어요. 당시에는 워낙 경계심이 많을 때여서 사람을 쉽게 믿지 않았는데, 이 상하게 그 분에게는 전화를 걸게 되더라고요. 그게 연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됐습니다. 당시에도 제 키가 170센티미터는 됐습니다. 열세 살로는 보이지 않았죠. 나중에 사장님에게 왜 나를 캐스팅했냐고 물어보니까 ‘눈이 마음에 들었다’라고 말하더라고요.”

따지고 보면, 이 날이 그녀에겐 새로운 인생의 첫발을 내딛는 날이었다. 처음에는 뭐에 홀린 듯이 연예인이 돼지만, 원래 재능을 갖고 있었는지 연예인이라는 옷이 맞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엇인가에 한 번 재미를 붙이니, 신이 나서 열심히 살기 시작했다. 그녀의 표현처럼 손에 쥔 게 없는 사람은 그걸 놓지 않으려고 혼신을 다해야 산 것이다. 열심히 한 것은 연기뿐만이 아니다. 반올림 오디션에 붙고 나서, 곧바로 검정고시 준비도 해서 중학교, 고등학교 과정을 모두 거쳤고, 지금은 어엿한 대학생이다.

“솔직히 말하면, 힘들게 자라 자수성가했다는 이미지 싫어요. 별은 별로 있어야지 그 별의 뒷모습 어떻게 생겼는지 다 보여줄 필요는 없잖아요. 그렇게 못 자라서 그런지, ‘잰 정말 귀티 나게 귀하게 자란 거 같아. 참 밝아’ 이런 이야기 듣고 싶어요. 티 없이 밝은 사람이 되고 싶었고요. 사실 그동안 조숙하다는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처음에는 그게 좋은 건줄 알았죠. 생각도 깊고 아는 게 많다는 의미로 들리기도 해서. 근데 지금은 싫어요. 인터뷰가 나가서 내 얘기를 들으면 낯설 것 같습니다.”

사실 김정민은 자신의 가족사를 이야기하기까지 마음이 복잡했다. 지난 과거를 잊고 싶어서가 아니라, 스스로 측은해 지는 게 싫어서 그렇다. 누구보다도 당차고 활기찬 사람이어서, 힘이 빠지는 게 싫은 것이다. 그래도 이렇게 이야기를 꺼낸 것은 세월이라는 게 마음을 많이 누그러뜨려 주었고, 특히 지난해부터는 엄마와 함께 살게 됐기 때문이다. 새로운 아빠도 두 명의 동생도 생겼다. 처음 만들어진 가족 구성원대로 살아가진 못했지만, 하나의 가정이 만들어진 것에 고마워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엄마를 미워해야하는 게 정상일 거예요. 헌데, 나는 정말 엄마를 심하게 사랑하고 집착해요. 요즘도 집에 있는 날 엄마가 없으면 미칠 것 같아요. 제가 친구를 안 만난다고 했잖아요. 친구 만날 시간 있으면 저는 엄마랑 있어요. 어딜 가도 저를 장녀로 보지 않아요. 티 없이 자란 막내나 외동딸로 봐요. 그렇게 보이려고 노력 많이 했어요. 그게 엄마한테 효도하는 거라 생각했어요. 예전에는 엄마를 사랑하면서도 미워했는데, 지금은 많이 사랑합니다. 옆에 있어주는 게 감사합니다.”

부모 자식 관계는 미워하고 싶다고 미워해지고, 사랑하고 싶다고 사랑해지는 게 아니다. 처음에는 자신을 버린 엄마가 몹시 밉기도 했지만, 나이가 들면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엄마가 이해가 되고, 오히려 연민을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엄마가 옆에 있어주는 것만 해도 너무 고맙다고 한다. 행복이 무엇인지 안는 것이다. 그녀는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렸다.
Updated : 2009.09.18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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